"야·어이 대신 제 이름을"…안전모에 새겨진 이주노동자들의 이름
광주 노동존중 캠페인…"4년 일했는데 아직도 이름 몰라"
국적 대신 이름 적힌 안전모 전달…"존중은 이름 부르기부터"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보통 현장에서는 '야', '어이'이렇게 불러요. 제 이름은 잘 모르죠."
28일 오전 광주교통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주노동자에게 이름을 불러주세요' 노동존중 캠페인.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훌라잉우(40)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안전모를 손으로 몇 번이고 만져봤다.
안전모 앞면에는 미얀마 국기와 함께 그의 이름이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는 훌라잉우는 "내년이면 광주에 온 지 4년째인데 아직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현장에서는 보통 '야야야', '어이' 이렇게 부른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처음 이름 적힌 모자를 받았다"며 "이름 불러주는 게 좋다. 당장 오후부터 현장에 이 모자를 쓰고 갈 것"이라고 웃었다.
전태일재단과 고용노동부, 광주노동권익센터 등은 이날 산업현장에서 이름 대신 국적이나 비인격적 호칭으로 불리는 이주노동자 현실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행사장 책상 위에는 태국·미얀마·캄보디아·스리랑카 등 각국 국기와 노동자 이름이 적힌 안전모가 줄지어 놓였다.
두건과 형광조끼 차림의 이주노동자 50여 명이 참석했고, 행사장 뒤편에는 참석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모 40여 개도 따로 준비됐다.
단상 앞 대형 안전모 아래에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존중이 시작됩니다'라는 문구가 걸렸다. 참석자들은 안전모에 서명하며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자는 의미를 나눴다.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지 3년째 됐다는 스리랑카 출신 세한도 연신 안전모를 바라보며 "모자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야 이리 와", "빨리빨리 일해", "새끼야" 등을 꼽았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소개되자 이주노동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영대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일부 사업주와 정주노동자들은 이런 말이 인권침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언어가 안 통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문화가 현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주 벽돌공장과 고흥 계절노동자 인권침해 사례를 언급하며 "행정기관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시민사회와 함께 인권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승일 전태일재단 부사장은 "이주노동자 안전모 사업은 단순히 안전모를 보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존엄을 되찾고 서로를 존중하는 현장 문화를 만드는 실천"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오늘날의 전태일"이라고 강조했다.
장현석 고용노동부 국제협력관은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소중한 동료로 존중하겠다는 약속"이라며 "이런 작은 실천이 전국 사업장으로 확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진 퍼포먼스에서는 참석자들이 노동자의 이름을 직접 부른 뒤 안전모를 씌워주고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한 참석자는 태국 출신 노동자에게 안전모를 씌워주며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일하다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름이 적힌 안전모가 머리에 씌워질 때마다 행사장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지난해 전남에서 시작된 이주노동자 이름 부르기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최 측은 산업현장에서 이름 대신 "야", "어이", 국적명 등으로로 불리는 문화를 바꾸고,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노동자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노동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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