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년공 묘'에 헌화한 李대통령…"국민이 주인인 나라"
- 박지현 기자, 조수민 수습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조수민 수습기자 = "5·18 정신으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이재명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부터 묘역 입구 주변에는 이미 시민들이 길게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바리케이드가 설치되면서 시민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참배 모습을 지켜봐야 했지만, 현장은 대통령을 직접 보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9시 52분쯤 검은 정장 차림의 이 대통령이 김혜경 여사와 함께 차량에서 내리자 "이재명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휴대전화를 높이 들어 사진과 영상을 찍었고, 일부는 발돋움하며 손을 흔들었다.
김 여사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고, 이 대통령은 멀리 떨어진 시민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함께 사는 세상. 5·18 정신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반드시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후 참배단과 함께 묘역으로 이동한 이 대통령은 박인배·양창근·김명숙 열사 묘역을 차례로 찾았다.
세 사람은 모두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거나 갓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었다.
특히 박인배 열사는 자개 공장에서 일하던 열여덟 살 소년공이었다. 첫 월급 수령을 앞두고 있던 그는 시위 주동자나 핵심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1980년 5월 광주 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소년공 출신인 이 대통령의 과거 삶과도 오버랩되는 대목이었다.
양창근 열사는 17살이던 1980년 5월 행방불명된 뒤 오랫동안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무명 열사 묘역에 묻혀 있었다. 이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41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명숙 열사는 당시 서광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4살 학생이었다. 그는 친구에게 책을 빌리러 가던 길에 총성이 울리자, 개천 밑으로 몸을 피했지만, 복귀하던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 대통령은 이들 묘역에 국화 두 송이씩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참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민들은 바리케이드 밖에서 줄지어 서서 대통령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 19분쯤 참배를 마친 뒤 묘역을 떠나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진행되는 기념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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