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우릴 잊지 말아주세요" 마지막 외침…도청 앞 다시 섰다
전남도청 최후 가두방송 박영순씨…국기에 대한 경례문 낭독
고문·옥살이·개명 아픔 지나 5·18 민주광장 무대 올라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향해 진격하던 순간 마지막까지 광주의 상황을 알렸던 박영순 씨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무대에 섰다.
'80년 5월' 전남도청 앞 마지막 목소리가 이제는 새로운 도청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국가보훈부는 18일 오전 11시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개최했다.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개최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옛 전남도청의 개관을 기념해 무대를 민주광장으로 옮겼다.
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민주광장은 5·18민주화운동의 상징 공간으로 중앙에는 5·18의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박영순 씨는 국기에 대한 경례문을경례문을 낭독했다.
박 씨는 1980년 당시 유아교육을 전공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5월 27일 오전 2시 20분부터 약 15분간 전남도청 1층 상황실 옆 방송실에서 시민군의 마지막 상황을 알리는 가두방송을 맡으며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당시 방송에서 그는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이 방송은 계엄군 진압 직전 전남도청에서 울려 퍼진 '마지막 목소리'로 남았다.
박 씨는 방송 직후 현장에서 체포돼 상무대 보안대로 끌려갔다. 두 달 넘게 고문과 협박을 당했고, 계엄법 위반과 내란부화수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출소 이후에도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광주를 떠나 박수현이라는 이름으로 30년 넘게 살아야 했다. 오랜 세월 5·18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낙인 속에서 고통받았고, 2015년 6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서야 비로소 명예를 회복했다.
박 씨는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당시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45년 전 "우릴 잊지 말아달라"던 박 씨의 외침은 이날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문으로 다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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