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T "암 발생 이전에 발병 자체 원천 차단 기술" 개발…'네이처' 게재

"암이 자라기 전, 몸 안에서는 '토양'이 먼저 바뀐다"…세계최초 규명
환자 모델 검증 통해 치료 표적 가능성 확인…예방 중심 암 치료 전략 제시

GIST 생명과학과 최진욱 교수, 이혜영 박사과정생(왼쪽부터),MSK 에릭 카르도소(Erik Cardoso) 박사과정생, 이주현 교수(오른쪽 위 왼쪽부터) (지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뉴스1

(광주=뉴스1) 조영석 기자 = 국내 연구진이 폐암이 눈에 보이는 종양으로 성장하기 훨씬 이전, 돌연변이 세포가 주변 세포들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암이 자라기 좋은 토양'을 미리 만든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암이 발생한 후에야 치료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발병 자체를 극초기에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생명과학과 최진욱 교수연구팀이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 이주현 교수 연구진과 공동으로 폐암 발생 초기 단계의 세포 간 연쇄 반응(cascade) 구조를 규명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지난 22일 온라인 게재됐다.

폐 선암(LUAD)은 사망률이 매우 높은 암종이지만, 초기 증상이 거의 없는 탓에 환자 대부분은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돼 치료 방법이 제한적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폐 줄기세포(AT2)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어떻게 암으로 발전하는지 연구해 왔으나, 돌연변이 세포가 주변 정상 조직을 암 친화적인 '섬유화 미세환경(fibrotic niche)'으로 길들이는 구체적인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은 마우스 모델과 인공 장기인 '3차원 폐 오가노이드' 실험을 통해 암 발생 초기 단계에서 일어나는 세포들의 '대화'를 추적했다.

연구 결과 폐암 발생은 크게 3단계의 연쇄 반응을 거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먼저 1단계에서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 폐 줄기세포가 '암피레귤린(AREG)'이라는 신호 물질을 대량 분비하며 주변 세포에 공격적인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2단계에서는 이 신호를 받은 주변 섬유아세포들이 본래의 조직 복구 기능을 상실한 채, 조직을 딱딱하게 변형시키는 '섬유화 상태'로 전환된다. 비옥했던 토양이 암세포 성장에 최적화된 특수한 환경으로 개간되는 것과 같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조성된 섬유화 환경이 면역세포(대식세포)를 불러들여 염증 반응을 극대화하고, 이 염증 신호가 다시 돌연변이 세포의 악성 변화를 촉진하는 '자기 증폭 회로'를 완성한다. 암세포와 주변 환경이 서로를 돕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며 본격적인 종양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 폐암에서 돌연변이 줄기세포가 주변 환경을 바꾸는 과정도( (지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뉴스1

특히 연구팀은 이러한 연쇄 반응의 핵심 고리인 '암피레귤린 신호 축'을 유전적·약물적 방법으로 차단했을 때, 섬유화 미세환경 형성이 억제되며 폐암 초기 발생이 현저히 저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실제 환자의 병태생리 환경에서도 재현되는지 검증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박무석 교수 연구팀과 협력, 환자 상태를 모사한 3차원 오가노이드 폐암 모델을 구축해 생체 외(Ex vivo)에서의 재현 가능성을 평가했다.

그 결과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인 KRAS 돌연변이 모델에서도 섬유화 미세환경이 실제 폐 조직 내에서 유도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최진욱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암 발병 후 치료하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넘어, 암 발생 자체를 뿌리부터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표적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폐암 발생을 극초기에 억제하는 차세대 예방 및 정밀 맞춤형 치료 패러다임을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최진욱 교수와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 이주현 교수가 공동 지도하고 GIST 이혜영. MSK 에릭 카르도소(Erik Cardoso) 박사과정생이 제1저자로 수행했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