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㉒]…저도(楮島)

'어린 왕자'가 살던 섬…'언덕바지의 해넘이' 장관
행정구역따라 '이리저리'…'조도면'에서 '장산면', 다시 '진도읍'으로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254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45개의 유인도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항해를 시작한다.

선착장에서 본 저도 풍경.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저도(楮島)는 진도군 진도읍에 딸린 섬이다. 면적 0.168㎡, 해안선 길이 4.5km인 작은 섬으로 상주인구라 해 봤자 3가구 3명이 전부다. 가구당 1명씩이다. 인구가 적다 보니 산월리 '저도 반(班)'이다. 1973년도 내무부 '도서지'의 '19가구 125명, 분교생 20명'이라는 기록이 신화처럼 아득하다.

저도는 남녁 섬이 대부분 그렇듯이 하릴없는 혹한의 겨울철이 지나면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연어 회귀하듯 고향으로 돌아와 산벚꽃으로 피어나는 섬이다. 도연명(陶淵明)이야 버릴 벼슬이라도 있지만 벗을 감투조차 없는 섬사람들의 '신귀거래사'는 봄 여름 가을 따라 3계절을 흐른다.

오래된 옷처럼, 도회지의 편리함보다는 섬의 불편함이 더 익숙한 탓이다. 많을 때는 3명이 살던 섬의 인구가 20여 명 남짓 늘어난다. 빈집 10여 채가 헐리지 않고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사장 앞 텃밭을 일궈 땅콩 심는 농부와 조립식 건물의 저도밀알교회.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예전에는 김이나 톳발을 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허리 꼿꼿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굽은 허리로 텃밭을 가꾸고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홀로 자란 쑥이나 고사리를 꺾거나 마을 앞 갯가로 나가 해초를 뜯는 삶이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살던 별 같은 섬이다. 귀 기울이면 '나는 해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구경하러 가자. 하지만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해'라는 여우의 속삭임이 파도를 탄다.

마을 앞 해안가의 길이 100m 남짓 백사장은 저도의 '공설운동장'이었다. 이제 노인들만 남은 섬에서 백사장은 오래전 기능을 잃고 추억만 남았다. 마을 뒷산 잔등에 오르면 갯바위 너머로 다도해의 깨알 같은 섬들이 해맑은 얼굴을 내밀고, 저녁나절의 바다는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로 하루를 마감한다.

저도 마을 앞 백사장.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살던 별 같은 섬이다. 귀 기울이면 '나는 해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구경하러 가자. 하지만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해'라는 여우의 속삭임이 파도를 탄다.

'저도'는 닭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닭섬'이라고 불렀다. 후대에 '닥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닥나무 '저(楮)'자를 차용, 저도(楮島)가 됐다.

마을 앞으로 보이는 진도 본섬 사이에 원형 모습의 작은 부속 섬을 갖고 있다. '소저도'라 부른다. 저도가 닭이라면 무인도인 소저도는 저도가 낳은 달걀에 해당한다고 전해온다.

저도 반장 임성자 씨(오른쪽)와 진도섬투어호 선장 장철호 씨가 마을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저도의 이력은 떠돌이 삶처럼 흐르다 진도 앞바다에 멈췄다. 저도는 1990년까지만 해도 신안군 장산면에 속했다. 원래는 진도군 조도면 소속이었으나 1983년 진도군의 만재도·고사도·평사도·송도와 함께 신안군으로 넘어갔다. 그 뒤 다시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1990년 8월 1일 '신안군 저도'는 '진도읍 저도'로 돌아왔다.

'저도'는 닭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닭섬'이라고 불렀다. 후대에 '닥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닥나무 '저(楮)'자를 차용, 저도(楮島)가 됐다.

'저도가 신안군 장산면에 속했을 당시에는 이장이 행정적인 일을 보거나 수당을 받으러 면사무소에 갈라치면 진도로 건너간 후 목포로 배를 타고 나갔다가, 다시 여객선을 타고 (신안의)장산도에 있는 면사무소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꼬박 3박4일이나 걸려야 했다.' 이재언 작가가 '한국의 섬'에서 묘사한 '신안군 저도'의 기구함이다.

'하늘받이'라 부르는 특이한 형태의 빗물 수집 장치. 폐교 뒤에 있다.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물이 귀한 섬이다. 조도면의 급수선을 불러 식수를 해결한다. 급수선은 정해진 시간마다 오는 버스보다는 불러야 오는 택시 형태에 가깝다. 그래도 한 달에 두어 번, 물이 떨어질 때쯤 조도면으로 연락하는 것쯤은 우물물을 사용하던 예전에 비하면 불편도 아니다.

버려진 우물들이 마을 이곳저곳에 퀭한 눈으로 남고, 길 건너 폐교에는 특이한 형태의 빗물 수집 장치가 녹슬기를 거부한 채 남아 있다.

주민들이 '하늘받이'라고 부르는 빗물 수집 장치는 2019년 진도군이 설치한 '친환경 무동력 빗물활용시설'이다. 빗방울이 지상에 닫기 전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별도의 포집체를 통해 빗물을 모으는 시설이다. 형태가 유럽풍의 삼각형 지붕을 닮아 눈길을 끈다.

마을어촌계가 운영하는 마을 회관과 교회가 공공시설의 역할을 한다. 마을회관은 여행객이 묶어갈 수 있는 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를 겸하고, 건너편 저도밀알교회는 반장 임정자 씨가 유일한 신도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저도 선착장 앞 우물.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 반장 임정자 씨(73)는 "마을에 우물이 예닐곱 개가 있었다"며 "그중에서도 선착장 앞의 우물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주민들의 주 식수원으로 사용했다"고 기억했다. 임 씨는 학교에 있던 '하늘받이'나 다른 우물물들은 건지러워서 식수보다는 생활용수로 이용했다고 했다.

'하늘받이'가 남아 있는 폐교는 진도서초등학교 저도분교장으로 1992년 문을 닫았다. 자신감 넘치던 '나는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자'라는 교훈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교 당시 교사 1명, 학생 1명이었다. 1950년 6월15일 신안군 장산동초등학교 저도분교장으로 설립돼 저도의 행정구역 변천을 따라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 달았다.

폐교된 저도분교 교사(校舍)와 빈터.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어촌계가 운영하는 마을회관과 교회가 공공시설의 역할을 한다. 마을회관은 여행객이 묶어갈 수 있는 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를 겸하고, 건너편 저도밀알교회는 반장 임정자 씨가 유일한 신도이다.

진도 쉬미항에서 섬사랑 10호와 13호가 격일제로 오간다. 오가는 섬사랑호가 같은 시간대에 맞물리기 때문에 당일치기로는 적당하지 않다.

대신 '진도섬투어' 유람선이 세방 선착장에서 상시 출발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진도군 가사도 출신 장철호 씨(62)가 유람선의 선장이다.

'진도섬투어'호 장철호 선장이 자신의 유람선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진도자랑에 한창이다.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12살 되던 해, 섬이 싫어 서울로 간 뒤 쉰 고개를 앞둔 48살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유튜버로 활동하며 고향 알리기에 그저 신나는 사람이다. 소요 시간이 다른 코스별 요금으로 오전 8시부터 가사군도를 비롯한 조도면 일대 섬투어가 가능하다.

바람을 가르는 12인승 쾌속선의 유람선에 오르면 수십 마리의 갈매기 떼가 경쟁하듯 곡예비행으로 함께하고, 고물에서 치솟는 포말도 이에 질세라 부지런한 담박질로 뒤좇는다.

유람선과 동행하는 갈매기 떼의 비행. 뒤로 발가락 섬(오른쪽)과 손가락 섬이 보인다. 2026.4.24.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저도' 취재를 마치고 갈매기와 동행하여 세방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 선장이 4분의 3박자 트로트를 끄고, 대신 저음으로 짙게 깔리는 러시아 가요 '백학'을 틀었다.

노래는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 백학이 된 것은 아닐까'라 했지만 '어쩌면 백학이 아니라 갈매기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갈매기는 선착장에 도착한 뒤에도 한참을 머무르다 제 길을 갔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