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들의 아버지' 김윤하 전남대병원 교수 정년퇴임

33년간 아이 1만명 받은 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장
"사라지는 아이 울음소리…의료진에 사명감 강요 시대 지나"

김윤하 전남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초음파 진료를 하는 모습.(전남대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2.27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고위험 산모들의 아버지와 같았던 김윤하 전남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정년퇴임한다. 전남대학교병원 분만실은 물론 33년간 대한민국 출산 지도의 불을 밝혀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27일 전남대학교병원에 따르면 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장인 김 교수는 28일 정년퇴임을 맞는다.

김 교수는 1993년 전남대병원 산과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수많은 밤을 분말실에서 지새웠다. 정년퇴임을 하루 앞둔 이날도 김 교수는 2건의 수술을 집도한다.

그의 손을 거친 아이는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시기엔 감염 임산부들에 대한 진료 지침을 마련했고,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떠난 상황에도 의사 소임을 다해 지난해 제4회 윤한덕 상을 수상했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김 교수는 "처음 가운을 입었을 땐 분만실이 늘 북적였다"며 "지금은 지역의 산부인과들이 문들 닫고, 멀리 섬마을이나 산간 지역에서 헬기를 타고 우리 센터로 오는 고위험 산모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체감하는 대한민국 저출산의 현실은 지표보다 훨씬 심각했다.

김 교수는 전공의 시절 우리 병원의 한 달 분만 건수는 120건이었으나 지금은 60건으로 반토막 났다"며 "한때 월 300건 이상 분만했던 인근 병원도 이제 1년에 10건도 채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초저출산과 산부인과 전공의 기피 현상이라는 사회적 화두 앞에 김 교수는 퇴임을 앞두고 국가를 향해 뼈아픈 조언을 남겼다.

김 교수는 "지난해 울산에서 생후 5일된 아기가 뇌손상을 입은 사건과 관련해 병원이 16억 원이 넘는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다. 현장 의료진에게 사명감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꼬집었다.

그는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는 필수의료진이 법적·경제적 불안감 없이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 즉 '국가 책임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역의 분만실 불은 영영 꺼질지도 모른다"고 현실을 짚었다.

김윤하 전남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남대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2.27

그럼에도 김 교수가 산부인과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태어난 300g의 초미숙아가 건강하게 자라 성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면서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간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는 마법 같은 경험이 나를 30년 넘게 이 자리에 묶어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것이 바로 지역의 필수 중증 의료시스템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불안해하는 후배 의사들에겐 산부인과만의 독보적인 가치를 역설했다.

김 교수는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생명을 창조하고 받는 일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한 만큼 로봇이 분만을 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라며 "인류를 유지하는 자연 생리 현상인 임신과 출산을 책임진다는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그는 교수 타이틀을 내려놓은 뒤에도 지역병원에서 진료를 보며 역할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김윤하 교수는 "제 손을 거쳐 간 1만여 명의 아이가 이제는 이 사회의 든든한 일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며 "그 아이들이 다시 안심하고 부모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