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민군 민원부장' 정해직 씨 별세
"두 차례 해직에도 좌절 않아"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민원부장을 맡아 희생자 수습에 헌신했던 정해직 씨가 신군부의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하다 9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전남 보성 출신인 고인은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보성 노동초등학교 광곡분교 교사로 재직 중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5월 18일 광주에 왔다가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한 뒤 시위에 동참했다.
25일 시민군 내부에 새로운 항쟁지도부가 꾸려지자 그는 민원부장을 맡아 권력 공백 속 시민 불편을 해소하는 업무를 총괄했다.
당시 고인은 행방불명자와 사망자 신고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관을 마련해 장례를 돕는 한편 생필품 공급과 시가지 청소에도 나섰다.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그는 민원부를 돕던 학생들을 돌려보낸 뒤 옛 전남도청에 남아 있다가 계엄군에 체포됐다.
상무대 영창과 505보안대를 거치며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내란중요임무 종사죄로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약 10개월 복역 뒤 1981년 4월 석방됐다.
고인은 항쟁 참여로 교단에서 해직돼 과일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으나 1983년 특별채용으로 복직했다.
이후 교육민주화를 위해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하고 호남민주교육실천협의회 사무국장, 전남교사협의회 부회장, 전국교사협의회 초등위원장 등을 지냈다.
1989년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위원장과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다시 해직되기도 했다.
1994년 특별채용 형식으로 재임용됐지만 경력·보수에서 불이익을 겪었고, 2000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에는 해직 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시효 문제로 기각됐다.
이후에도 그는 5·18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힘썼다. 시민군동지회 초대회장과 5·18기념재단 후원회장을 맡았으며, 재야 민주인사 모임 '이심전심' 총무로 활동하며 광주 시민사회와 오월정신을 잇는 데 앞장섰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아 힘겨워했다.
빈소는 광주 북구 용전동 그린장례문화원 1층에 마련했다. 발인은 11일 오전, 장지는 국립5·18민주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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