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살고 싶어졌다" 자살시도 청년 구한 정신건강 '최전선'

[인터뷰] 광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 상담원 박규창 씨
명절이면 위기 전화 더 늘어나…1577-0199, 365일 24시간 운영

2일 오후 광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만난 박규창 상담원의 모습. 2025.10.2/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광주 위기상담 전화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지난 2일 오후 광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 상담실. 상담원 박규창 씨(30)가 수화기 너머로 이어진 침묵을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공백 끝에 내담자가 어렵게 입을 떼자, 박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20여 분간 이어진 통화는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이런 경우가 흔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속 얘기를 꺼내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말을 트게 하고, 고민을 털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 일이죠."

박 씨가 근무하는 센터는 통합적인 정신질환 예방·치료·상담·사회복귀훈련 등을 수행하는 지역 거점 기관이다.

'1577-0199'로 연결되는 정신건강 상담 전화는 야간·주말을 가리지 않고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자살 충동, 정신질환 관련 정보, 입원 상담까지 시민들의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를 전화 한 통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상담 이용률은 여전히 낮다. 광주시민 스트레스 인지율은 24.7%(2024년), 자살률은 27.3명(2023년)에 달하지만 지난해 위기상담 이용 건수는 1만 5168건에 그쳤다.

특히 추석·설 같은 명절은 상담원들에게 '비상근무'와 다름없다. 가족 간 갈등이 불거지거나, 1인 가구의 박탈감이 극대화되면서 전화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명절 전후에는 상담·출동 건수가 체감될 정도로 늘어요. 우울감이 치솟거나 가족과 인연을 끊은 분들이 고립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2일 오후 광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만난 박규창 상담원이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2025.10.2/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센터 상담원들은 전화 상담만 하는 게 아니다. 경찰과 합동으로 현장에 출동해 응급 입원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박규창 씨는 "당장 병원 이송이 필요한지, 귀가 조치가 적절한지 긴급히 판단해야 한다"며 "안전을 지키는 일이 가장 큰 책임"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내담자의 전화를 받으면 종종 상담원 스스로도 무력감을 느낀다. 반복적으로 위기 전화를 거는 다빈도 대상자나 '자살'을 협박 수단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그를 버티게 하는 건 "덕분에 살고 싶어졌다"는 말 한 마디다. 지난 5월 취업과 대인관계 문제로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또래 청년을 한 시간가량 상담한 뒤 치료 의지를 심어줬다. 2주 뒤 걸려온 전화는 감사 인사였다.

"병원도 다니고 시험공부도 다시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줄 때, 이 일이 의미 있다고 느낍니다."

박 씨는 원래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였다. 그러나 환자와 '기계적 관계'만 맺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그는 "간호는 본래 사람 간 교류와 치유라 생각했는데, 병원에선 너무 바빠 그런 여유가 없었다"며 "심리적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일도 치료라 생각해 이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내담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혼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는 분들이 많아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박 씨의 소망은 크지 않다. 그가 상담한 사람들이 사고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

"올해 추석에는 무겁지 않은, 행복한 소식만 들렸으면 합니다. 혹시나 힘드시면 언제든 전화주세요. 들어드릴게요."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