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⑪] 독거군도(슬도·혈도)

'물 반, 멸치 반'으로 차고 넘치던 멸치잡이 섬 '슬도'
절경과 비경의 '구멍섬'…갱번엔 돌미역이 '절로절로'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254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45개의 유인도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항해를 시작한다.

슬도마을. 마을 앞 도로는 선처럼 바다와 경계를 짓고, 경계 너머에서 파도는 늘 거칠고 땅은 가파르다.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슬도(瑟島)

독거도 서북쪽의 섬으로 까마귀가 나는 형국이라 하여 본래 '비아(飛雅)섬'이라 불렀다. 일제 때 비아를 비파로 잘못 알아들은 일본인 측량사가 '슬도(瑟島)'라 기록하는 바람에 섬 이름이 바뀌었다거나,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거문고 슬(瑟)'자를 붙여 슬도라 했다는 설도 있다.

슬도 표지석.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1979년 119명에 달하던 인구가 현재는 10명 안팎으로 줄었다. 1968년 슬도 분교가 문을 열었으나 1996년 조도초등학교로 통폐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1554년 함안 조(趙) 씨가 이 섬에 정착했다고 전해 진다.

행정구역상 주변의 탄항도, 혈도와 함께 3개의 섬을 합쳐 1개 리를 형성하다 보니 이장은 없고 반장이 마을을 대표한다.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조도면사무소 소속 급수선이 2~3주에 한 번씩 오가며 식수를 보급한다.

슬도는 조도 관내서 멸치잡이 어획고가 가장 높은 섬이다. 멸치를 삶기 위한 커다란 화덕이 집마다 필수조건으로 들어서고, 마당을 겸하는 마을 길을 따라 설치된 대형 크레인이 징거미 발처럼 허공을 가르고 있다.

독거도 앞, 고깔섬은 슬도 부속 섬으로 내부에 작은 강당 크기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다. 고깔모양의 생김새가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한 칸을 떼어 옮겨 놓은 듯하다. 선상 음악회라도 개최한다면 동굴 내부는 절대 음향의 최적지가 될 것 같다.

옛날 해적 부자가 살았다는 구전이 전해온다. 근처에 '행금(行琴)'이나 '화단(花丹)'이라 부르는 여자 이름의 여(礖)들이 증빙이라도 하듯 곱게 떠 있다.

슬도 마을 앞 크레인. 멸치잡이 낭장망을 끌어 올리는 용도다.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슬도는 조도 관내서 멸치잡이 어획고가 가장 높은 섬이다. 멸치를 삶기 위한 커다란 화덕이 집마다 필수조건으로 들어서고, 마당을 겸하는 마을 길을 따라 설치된 대형 크레인이 징거미 발처럼 허공을 가르고 있다. 크레인은 멸치잡이 낭장망을 끌어 올리는 용도로 앞바다가 물 반, 멸치 반으로 차고 넘치던 시절의 방증들이다.

6년째 슬도 반장을 맡고 있다는 조재성 씨(66)는 "슬도는 돌미역 못지않게 마을 주민 모두 멸치잡이를 할 만큼 멸치로 유명한 섬이나 근래 들어 어황이 좋지 않은 데다 주민들도 나이가 들어 현재는 두 집에서만 멸치를 잡는다"고 했다.

슬도 민가. 바다 건너편으로 독거도가 보인다.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섬의 북쪽에 자리한 집들은 해안을 따라 늘어서고, 마당을 겸하는 마을 앞 도로는 선처럼 바다와 경계를 짓는다. 경계 너머에서 파도는 늘 거칠고 땅은 가파르다.

슬도는 선착장 시설이 미비한 탓에 이물이 열리는 차도선만 접안이 가능하다. 1977년 마을 동쪽에 방파제를 겸한 선착장이 들어섰으나 5년 뒤인 1982년 태풍으로 부서져 버렸다. 큰바람이라도 불면 작은 배는 육지로 끌어 올리고, 큰 배는 멀리 진도 팽목항이나 서망항으로 피항시켜야 한다. 슬도의 지난한 일상이 무너진 방파제 위에 얹혀 여전하다.

혈도 '용냉이굴'. 원안은 섬의 정상에서 본 동굴 내부.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혈도(穴島)

가사군도에 있는 '혈도'와 구분하기 위해 '독거혈도(獨巨穴島)'라고 부른다. '구멍섬' 이나 '구무섬'이라고도 한다. 각기 다른 이름은 섬의 천연동굴에서 비롯된다.

'용냉이굴'이라 불리는 동굴은 섬의 정상 근처에서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뚫려 있다. 섬 정상의 입구에서는 넓은 동굴 내부가 들여다보이지만 바다 쪽에서는 갯바위 틈새처럼 보여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요새화된 지형으로 '해적이 숨어 살았다'는 슬도의 고깔 섬과 한데 묶어 전설의 한 고개를 넘어도 좋을성싶다.

혈도의 갱번과 마을 풍경.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조도면지는 '남풍이 강하게 불면 동굴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섬 윗구멍으로 올라가면서 비파소리를 내서 북쪽 비파섬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고 적고 있다.

가사군도에 있는 '혈도'와 구분하기 위해 '독거혈도(獨巨穴島)'라고 부른다. '구멍섬' 이나 '구무섬'이라고도 한다. '구멍(穴)'에 근원을 둔 각기 다른 이름은 섬의 천연동굴에서 비롯된다.

면적 0.11㎢의 작은 섬으로 독거군도의 주 섬인 독거도에서 남서쪽으로 4km가량 떨어져 있다. 동남쪽 해안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해식애가 발달해 있고, 서북쪽 갯가에 작은 파식대가 형성돼 있다.

독거도 옆 탄항도가 파평 윤(尹)씨 일가 섬이라면, 탄항도 서남쪽의 혈도는 함안 조(趙)씨 일가 섬이다.

혈도 갱번의 돌미역.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1973년에는 5가구 32명의 주민이 살았다. 1968년 슬도와 함께 조도초등학교 혈도분실이 개설되기도 했으나 10년 뒤인 1978년 문을 닫았다. 현재 상주인구는 없고, 여름 한철 돌미역 채취를 위해 갱번 주인들이 오가거나 잠시 머무를 뿐이다. 혈도 역시 '독거미역'의 주생산지로 전체 해안가가 돌미역으로 뒤덮여 있는 '미역섬'이다.

혈도 최고봉을 이루는 바위기둥.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선착장 대신 마을 앞 갯가에 차도선이 댈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갯가 동쪽 벼랑 위에 몇 채의 집들이 취락을 형성하고 있지만 마을과 갯가는 서로 연하여 구분이 무의미하다. 물이 들면 바다가 마당이 되고, 썰물 때는 드러난 갯가가 섬마을 마당이 된다.

작은 섬 혈도를 더 작은 섬들이 동서남북에서 둘러서고, 섬의 곳곳은 절경과 비경으로 가득 찬다. 마을 동북쪽의 갯가 건너에 독도의 숫돌바위를 닮은 솔섬이 우뚝 서고, 해안 절벽이 굴처럼 움푹 팬 초도가 손잡을 거리에서 쌍을 이룬다.

기도하는 여인 바위.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또 혈도 동남쪽 해안에는 우람한 남성성의 바위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위풍당당하다. 바위기둥은 높이 95m로 혈도 최고봉이다. 그러가 하면 반대편 서북쪽 파식대에는 보는 이마저 숙연해지는 '기도하는 여인' 바위가 조각상처럼 서 있다. 바위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비손의 절절함이 애통스럽다.

섬의 동남쪽에 '소경여'가 점처럼 찍히고, 그 너머에 국토 최남단 제주도와 한자 표기가 똑같은 '제주도'라는 무인도가 있다. 서쪽에는 '납닥섬'으로도 불리는 국유지 '납대기섬'이 치렁치렁한 미역을 키워가며 혈도를 지킨다.

실안개 낀 혈도 풍경. 가운데 혈도를 중심으로 왼쪽은 솔섬, 오른쪽은 납대기섬이다. 2025.9.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가는 길 : 섬사랑 9호가 진도 팽목항에서 오전 9시 출발, 슬도를 거쳐 독거도와 혈도로 간다. 대략 1시간가량 소요된다. 기상 상태에 따른 결항이 잦다. 문의는 ㈜해광운수로 하면 된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