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끝 아닌 시작] 전두환 손자·노태우 아들에 기대감 커져
전우원, 일가 중 처음으로 추모제 참석 등…주변인 변화 가능할까
노재헌, 진정성 행보 수년째 이어가…올해 첫 '회고록 수정' 약속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광주학살 책임자 후손들의 사죄와 약속이 이어지면서 진상규명 등 미완의 과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와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각각 광주를 찾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죄없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과거사를 대신 사과하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27)의 행보는 지난 3월14일 시작됐다. 당시 미국에서 근무하던 전씨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폭로하면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전두환을 '학살자'라 표현했고, 서울 연희동 자택 내부에서 할머니인 이순자가 골프를 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올리며 '전씨일가의 비자금' 폭로에 나섰다.
첫 폭로 후 보름 뒤에는 한국에 입국, 3월31일 5·18유족과 피해자 등을 만나 사죄했다.
당시 그는 '할아버지가 민주주의를 역행한 학살자'임을 인정하며 일가 중 처음으로 국립 5·18민주묘지에 참배, 오월 어머니를 만나 용서를 빌었다. 오월어머니는 1980년 5월 광주 항쟁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구속·부상을 입은 피해자 가족들의 여성 모임이다.
이후에도 방송사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촬영 등 비공개 일정으로 몇 차례 광주에 다녀갔던 그가 다시 얼굴을 드러낸 건 지난 17일 열린 5·18민주화운동 추모식이다.
47일 만에 광주에서 공식 일정을 한 그는 추모행사에서 오월단체 주요 인사들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 숙였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당하신 분들께 잘못을 사죄드린다"며 "제 가족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죄의식을 갖고 잘못을 사죄드리러 온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다같이 기억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며 "이런 자리에 제가 와서 오히려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행사 종료 후에는 광주 동구 메이홀에서 열리고 있는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 농사' 전시를 관람한 뒤 전야제 행사에서 광주 대동정신을 상징하는 음식인 '주먹밥' 만들기 체험도 했다.
기념식 당일에는 행사에 미리 초대받지 못해 식장 안에는 입장하지 못했지만 5·18기념재단 관계자의 안내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구묘역)에 참배하고, 5·18 최초 발원지인 전남대를 찾아 둘러봤다.
전우원씨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광주 시민분들의 목숨을 건 희생 덕분"이라며 "오늘 만큼은 국민들이 5·18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광주 5·18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사죄를 이어오고 있는 전우원씨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지난 12일 5·18기념재단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일반인 1000명 중 67.5%가 전씨의 사죄를 긍정평가했다.
사과 이후 가장 바라는 점으로는 전두환의 비자금 환수에 대한 응답이 28.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5·18 진상규명(21.8%), 피해자의 명예회복(21.5%), 다른 가해자들의 고백과 사죄 유도(18.6%)가 뒤를 이었다.
전우원씨는 뉴스1 취재진에게 "늦었지만 많은 5·18 관련자들이 두렵더라도 양심 고백을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비자금 등 가족 문제는 주변 분들이 양심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전우원씨의 최우선 과제가 '비자금 환수' 등 가족에 대한 폭로와 설득이라면 노태우의 장남 노재헌씨(58)는 '아버지 회고록 정정' 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노씨는 전씨보다 훨씬 빠른 지난 2019년 8월 처음 광주를 찾은 뒤 꾸준한 사죄 행보를 이어오고 있지만 회고록 정정 등을 약속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노재헌씨는 2019년 8월23일 조용히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고 적었다.
그의 방문은 사흘이나 지난 뒤에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신군부 지도자의 직계가족 중 처음으로 참배·사죄가 있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후 3개월 만인 12월6일에도 두번째로 참배했다.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 명의의 조화가 함께했다. '참회의 꽃'에는 '13대 대통령 노태우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는 리본이 달렸다. 당시 노태우는 투병 중이었다.
이후에도 2021년 4월과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그해 12월과 지난해 10월까지 총 여섯 차례 광주를 찾아 참배 후 5·18 사적지를 둘러보거나 관련 연극을 관람했다.
올해는 43주년 기념일을 앞둔 지난 9일 일곱번째로 5·18묘역에 참배한 뒤 어버이날을 맞이해 오월어머니집에 카네이션을 전달했다. 이 과정 중에서 처음으로 '회고록 정정'을 약속한 바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는 5·18이 '광주 사태'로 명시됐으며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말에 현혹돼 계엄군에 맞섰다고 적혀 있다.
그는 "아버지께선 생전 5·18민주화운동이 없었더라면 6·29민주화선언도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또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남다르게 생각하셨는데 그것들이 회고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해를 꼭 풀고 싶다. 아버지께서 가진 생각과 해오신 행동과 너무 다르게 비춰지고 본의와 다르게 알려지고 이해된 부분이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늦더라도 반드시 아버지의 회고록을 바로잡겠다"며 "아버지의 회고록에서 오해가 있는 부분은 반드시, 당연히 바로잡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아버지가 쓰신 회고록이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와 방법은 고민 중이다"고 밝혔다.
손자와 아들 두 사람의 계속되는 5·18에 대한 사죄와 약속에 광주시민들의 마음은 늦게나마 누그러지며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5·18유족과 피해자, 광주시민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 받은 두 사람의 행보가 진상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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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전두환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맞서 싸운 5·18민주화운동 43주년. 올해는 '미완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의 공식 조사가 종료되는 해지만 노재헌, 전우원 등의 사죄, 윤석열 대통령의 '오월 정신' 당위성 재차 확인 등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해로 평가된다.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과제들을 3편에 걸쳐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