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죄없이 죄인으로 죽었다" 전국 각지서 부글부글

[전두환 사망] "역사적 심판 물거품" 광주 분노
정치권 "국가적 예우 안돼"…대구·합천은 평가 엇갈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 전광판에 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오고 있다. 2021.11.23/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전국종합=뉴스1) 박준배 김대광 남승렬 이수민 조민주 기자 =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최고책임자인 전두환씨가 23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씨는 이날 오전 8시5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졌다. 발견 당시 전씨는 심정지 상태였으며 사망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전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 "역사적 심판 없이 죄인으로 죽어" 광주 시민사회 분노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오월단체는 사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전씨의 사망 소식에 분노했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계속된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대한민국 사법부를 기망한 전두환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자신의 회고록으로 5·18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면서 역겨운 삶을 살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학살자 전두환은 지연된 재판으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며 "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의 정의를 바로세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면담조사를 추진하던 도중 조사대상자인 전씨가 숨지면서 역사적 심판이 물거품됐다며 씁쓸해했다.

진상조사위는 "전씨는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다"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은 가중됐다"고 허탈해했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가 23일 오전 광주 오월기억저장소에서 전두환씨의 사망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 전두환은 죽더라도 5월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2021.11.23/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 사자명예훼손 형사 소송은 기각…민사는 계속

전씨가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던 도중 사망하면서 법조계에서도 한탄이 나왔다.

형소소송법상 피고인이 사망하면 재판부는 공소를 기각한다. 법조계에서는 전씨 재판도 공소기각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5월단체 등은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은 계속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비오 신부 유족과 5월 단체는 2017년 6월 전씨와 그의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회고록 출판·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전두환 회고록 고소인 측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형사재판은 공소 기각 결정이 되겠지만, 회고록 관련된 민사 재판은 헬기사격뿐만 아니라, 북한군개입설 허위 유포 등 더 망라적인 쟁점에 대한 것으로 전씨가 사망했어도 판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씨가 역사 앞에 국민 앞에 광주시민들에게 끝내 반성과 사죄하지 않고 사망한 것은 무책임한 모습이고 역사적으로도 오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역사의 죄인 전두환, 죽음이 면죄부 될 수 없다"

정치권 등에서는 살인마 전두환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역사의 죄인 전두환에게는 죽음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가와 국민에 반역한 전두환에게는 어떠한 애도도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150만 광주시민은 전두환의 국가장 등 어떠한 국가적 예우도 반대 입장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전두환이 역사와 국민에게 지은 무거운 죄는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고 역사에 그 죄상을 영원히 기록해 후손만대에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호남지역 국회의원들도 "살인마 전두환의 마지막 길이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장의 예우를 받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윤영덕·조오섭 의원 등 광주·전남·북 지역 국회의원들은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는 허망하고 분한 마음이 앞선다"며 "내란 학살의 주범, 전두환의 죽음으로 80년 5월, 헬기사격의 진실을 밝힐 기회도 소멸됐지만 역사의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보훈처가 국립묘지법에 따라 내란죄 등 실형을 받은 경우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당연한 조치"라면서도 "내란 학살의 주범, 전두환이 죽기 전에 국가장 법을 신속히 개정하지 못한 것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법적으로, 전두환의 국가장 여부는 국무회의 심의 등 정부의 판단으로 결정된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후보처럼 전두환을 추앙하는 일부 부역자들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두환씨 사망관련 호남지역 국회의원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1.2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각 지역 시민단체 "전두환 국가장 용납 못해"

경기 고양시와 울산 등 지역 시민단체들도 "국가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고양지역 26개 단체로 구성한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는 성명을 내고 "노태우씨가 사망한 지 한 달여만에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이번 전두환씨 사망으로 국가장 논란이 재현될까 우려된다"며 "진실을 숨기고 사과도 하지 않은 전씨의 국가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두환씨는 12·12 군사반란과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짓밟아 헌정을 유린한 장본인이다. 반성은커녕 관련 재판에도 불응하는 등 끝까지 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가장을 치르지 않는 것이 5·18 정신을 기리고 명예회복 추진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시민연대도 "자국민을 학살한 책임자이자 쿠데타로 국가를 전복한 범죄자가 제대로 된 책임도 지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고 죽었다"며 "전두환은 군인을 동원해 국민을 학살하고, 민주공화국을 무력으로 찬탈한 책임자"라고 규정했다.

이어 "끝내 책임자에게 반성과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광주시민들과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고통을 받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드린다"며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에 저항하고 고통받은 이들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전씨 고향 경남 합천과 보수 성지 대구 등에선 평가 엇갈려

전씨의 고향인 경남 합천군 주민들은 전씨 사망 소식에 놀라면서도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갈렸다.

합천군민운동본부는 "과오가 큰 인물이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킬 것"이라며 "장례를 치르고 나서 유가족과 합천군이 하루속히 일해를 거둬들여 엉킨 실타래 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주민 A씨(47)는 "지역 주민으로서 전직 대통령 시절 아쉬운 점도 있다"며 "하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과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전씨의 고향인 율곡면 주민들은 "율곡면 출신으로 돌아가신 분에 대해 많이 안타깝다"며 "정치나 광주사건 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지금은 망자에 대한 예우를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하고 전씨와 인연이 깊은 대구 지역은 무덤덤하거나 싸늘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전두환씨의 인생 전체는 논평의 의미처럼 다져서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했고 정의당 대구시당은 "전씨에게 애도는 과분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정의당 대구시당은 "정부는 전씨의 차명재산을 샅샅이 찾아내 추징금 징수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그럴 일이 없겠지만 정부는 국가장을 염두에 두지 마시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대구시당 측은 논평을 내지 않았다.

전씨의 모교인 대구공고 총동문회 측은 임시회의를 소집해 분향소 설치 여부 등을 논의하고 있다.

추승철 동문회 사무처장은 "임시회의 결과에 따라 분향소 설치 여부 등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동문들의 입장과 의견을 듣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nofatejb@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