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교생의 눈으로 본 5·18은…'사태 아닌 의거'·'피의 항쟁'

항쟁 8개윌 뒤 석산고 학생들이 쓴 작문집 39년 만에 공개
'정당한 민주적 권리의 주장' 등 담겨…학생의 날 맞아 조명

1981년 2월 광주 석산고 1학년 학생들이 작성한 작문.(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 뉴스1

(광주=뉴스1) 고귀한 기자 = 5·18민주화운동은 당시 학생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까.

1981년 2월 광주 석산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던 서충렬군은 '이 사건(5·18)을 굳이 '사태'라기보다는 '의거'라고 칭하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작문을 통해 '이 일은 오랜 독재하에서 거의 모든 자유가 통제돼온 지식인, 학생층의 자유를 향한 거국적인 힘의 발산이었다'고 주장했다.

'시위군들이 자동차로 시위를 할 때 대부분의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음료수·김밥·달걀·과일 등을 공급했고 또한 후원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의도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모든 시민들의 정신이 뭉쳐진 것이다'고 강조했다.

서군은 당시 정부의 잘못된 행위도 꼬집었다.

서 학생은 '정부가 이를 일부 불순분자의 책동이라고 했으나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이다'며 외신기자들에 의해 찍힌 필름은 외국에서 방영되는데 왜 당사자인 우리만 보지 못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광주 민중 봉기'라고 작문의 제목을 붙인 최병문군은 '이것이 하나의 정치적 장난이 아닌 한마디로 피의 투쟁이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며 '억눌렸던 유신 체제 붕괴 직전 전국은 소란의 도가니였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최군은 '의로운 도시 광주 역시 선봉장이 돼 임해오다가 전국계엄령이 5월17일 확대되자 참고 참았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한마디로 피의 투쟁은 시작됐다'고 서술했다.

이어 '언제 어디서 모이자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나가 보면 모두 한자리였다'며 '광주시민의 올바른 가치관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구나 하는걸 느낀다'고 밝혔다.

또 다른 동급생인 서왕진군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아픔으로 끝을 맺었지만 맨 처음 시도의 의의를 생각해볼 때 정당한 민주적 권리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고흥민군은 '시민들이 강경하게 나오자 정부에서 대규모 부대와 병력을 투입했다. 과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모두들 무심한지 아니면 모르는체 하는 것인지'라고 전했다.

ⓒ 뉴스1

석산고 학생들의 이 작문들은 5·18민주화운동 8개월 뒤인 1981년 2월 쓰여진 것으로 39년 만에 발굴됐다.

이 작문들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3일 오후 2시 5·18기록관 다목적강당에서 열리는 '오월, 그날의 청소년을 만나다'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조명될 예정이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는 정호기 강사(전남대 NGO대학원)가 1981년 석산고 학생들이 작성한 작문을 해제·정리한 내용이 담긴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구성한 5·18담론' 주제발표를 한다. 강남진 강사(전남대 사회교육학과 박사과정)는 '5·18민주화운동에서 청소년의 참여'를 주제로 발표한다.

또 이맹영씨와 김향득씨, 이봉주씨 등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교생이었던 6명은 자신들이 목격하고 기록했던 내용들을 직접 발표한다.

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