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실 알리기 앞장 선 박용준씨…투사회보 철필작업

광주YWCA 지키다가 계엄군 총탄에 숨져

광주YWCA 신협 근무 시설 박용준씨. 박씨는 들불야학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투사회보의 철필작업을 담당했다.(소설가 전영호씨 제공) ⓒ News1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1980년 5. 21. 밤 간간히 들리는 총소리는 밤의 정적을 깨고 있다. 악몽의 몇 일 노는게 그립다. (중략) 오늘 오후 그들은 드디어 우리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쓰러지는 몇몇 우리의 학우요 시민들 (중략) 헬기소리 또 총소리 싸우다 쓰러져간 우리 학우 그리고 광주시민 나도 부끄럽지 않게 일어서리라.'

5·18 당시 진실을 알리던 투사회보 제작에 앞장섰고, 투사회보가 만들어졌던 광주YWCA를 지키다가 유공자인 박용준씨가 작성한 일기 중 한 구절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박씨처럼 1980년 5월 당시 진실을 알리고 있는 사람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1956년에 태어나 영아원과 고아원에서 자란 박씨는 YWCA신협에서 근무하면서 청년회 활동과 빈민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1979년에 들불야학 제3기 강학(선생님)으로 들어가면서 들불야학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과 YWCA에 근무하면서 필경을 배웠던 박씨는 5·18 당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투사회보의 철필 작업을 했다.

박씨는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집행부가 정리해 보내놓은 것을 철필작업을 했다.

투사회보는 윤상원·이한열 열사 등 옛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시민군 관계자들이 당시 소식을 전해주면 기름종이를 철필로 긁어 글씨를 쓰고 등사작업을 통해 유인물로 만들어 광주시민에게 배포했다.

등사를 300장 정도를 하게 되면 긁은 기름종이가 상하기 때문에 박씨는 하루에도 같은 내용을 철필로 10여차례 작성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손이 부어 떨리는 등 모습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25일 열린 시민궐기대회에서 사회인 대표로 발표를 하기도 했고, 야학 학생들과 함께 투사회보 제작과 배포에 함께했다.

투사회보 제작실을 24일부터 광주 동구 대의동 YWCA 2층으로 옮기면서 박씨도 함께 이쪽으로 이동했다.

26일 밤 박씨는 야학 학생 등과 함께 투사회보 제작을 중단하고, 총을 들고 싸울 것을 결의하면서 눈물로 보냈다. 27일 박씨는 광주YWCA를 지키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고 숨졌다.

새로 조성된 5·18 묘역에 비문에는 '시대의 어두음을 온몸으로 맞서시다가 숭고히 떠나가신 스물다섯의 외로운 님의 생애, 살아남은 자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오리라…'라고 적혀있다.

박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광주YWCA는 그의 명의로 지급된 보상금으로 장학회를 설립,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가는 청소년 등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들불야학 강학으로 투사회보 제작에도 참여했던 소설가 전영호씨는 "박씨가 가족이 없어서 보상금 지급이 9년 정도 미뤄졌다"며 "결국 1996년 광주YWCA가 1억2279만8550원을 수령해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들불야학 학생 중 한명은 박씨에 대해 "박씨는 자신의 생을 열심히 살았다"며 "계엄군의 진압이 코앞에 다가오는 등 죽음을 앞두고도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jun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