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검역 전까지 한국땅 못밟아요" 여수검역소 가보니…
바다 한가운데서 검역…"인력도 부족하고 야간수당 못받아" 열악한 현장
- 민정혜 기자
(서울=뉴스1) 민정혜 기자 = "방역의 최전선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세균 등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 밤낮없이 전쟁을 치르는 국립여수검역소 검역관이 한 말이다.
우리나라 13개 국립검역소와 11개 지소는 우리나라 방역의 최전선이다. 검역관들은 해외 감염병 유입을 막기 위해 국내로 들어오는 항공기, 선박에 가장 먼저 도착해 검역을 한다. 각종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첫 단계인 셈이다.
검역의 역사는 14세기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니스는 흑사병으로부터 해안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감염병 유행지역에서 출발한 모든 배를 항구에 접안하기전 40일동안 억류했다. 40일 이후 감염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확인된 후에야 항구로 들여보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검역(quarantine)이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억류기간 40일을 의미하는 'quaresma'에서 유래한 것이다.
강옥경 국립여수검역소 광양지소 소장은 "현재의 검역도 그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역시 감염병 위험지역에서 출발하거나 전염병 환자 등이 있었던 선박은 항구에 접안하기전 필수적으로 승선검역을 받는다. 나머지는 전자검역으로 대신한다.
◇선박위 '노란깃발' 있으면 '검역중' 표시
승선검역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국립여수검역소를 찾은 것은 따뜻한 봄바람과 햇살이 가득한 지난 20일. 승선검역은 바다 한가운데서 이뤄진다. 2만톤 미만의 비교적 작은 선박은 항구와 가까운 제1검역장소에서, 2만톤 이상은 제2검역장소에서 검역을 받는다. 이날 승선검역은 출발지인 여수신항 관공선 계류장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제1검역장소에서 이뤄졌다.
검역소는 검역 전 검역등록을 받는다. 명칭, 최초 출발지, 국내에 들어오기 10일 전부터 머물렀던 나라, 감염병 의심환자 또는 그로 인한 사망자 유무, 도착시간 등의 정보가 담겨있다.
이날 검역을 받는 선박은 2만2000톤 규모의 '아젠트 선라이즈'다. 검역관 2명이 한 조가 돼 세관 감시정에서 아젠트 선라이즈로 옮겨 탔다. 1980년대 관공선 통폐합 이후 승선검역을 할 때는 항상 세관 감시정을 이용한다. 오후 4시20분께였다.
박기준 국립여수검역소 소장은 "옮겨 타는 과정이 위험하다"며 "큰 선박은 보통 건물 5층 높이인데 계단이 없는 경우 줄로 된 사다리를 이용해야 해 가끔 발을 헛딛어 바다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검역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선박 위에 노란색 깃발을 세운다. 오용택 아젠트 선라이즈 선장은 "검역 중이라는 표시"라며 "그 옆에 있는 빨간색 깃발은 위험물질이 적재돼 있는 선박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젠트 선라이즈는 석유화학제품을 실어나르는 선박이었다.
검역관은 선장과 만나 가장 먼저 항해 일지, 항해 중 환자 발생 등 특이사항을 확인했다. 선장은 선박위생관리 증명서, 세계보건기구 지정 감염지역 방문여부 등 9가지 사안을 확인하는 선박 보건상태 신고서를 작성했다. 선원들은 모두 건강상태 질문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검역관은 선원의 체온을 일일이 재서 몸 상태를 확인했다. 기준은 37.5도다. 아젠트 선라이즈에는 미얀마 국적의 선원을 포함해 총 2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 정상이었다.
아젠트 선라이즈 검역을 맡은 이창남 검역관은 "검역을 하기 전까지 이 선박은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다"며 "배들은 하루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검역에 협조적인 편"이라고 전했다. 오 선장 역시 "검역은 어떤 나라를 가든 받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익숙하다"고 밝혔다.
◇변기와 도마 가검물 모두 채취해 검사
선내 위생검사가 이어졌다. 쥐 또는 벌레 등 감염병 매개체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변기나 도마 등에서 가검물도 채취한다. 박영호 검역관은 "쥐나 벌레가 살만한 곳곳을 살펴본다"며 "가검물은 세균이 많이 사는 변기나 도마 등에서 많이 채취한다"고 설명했다.
검역 조사 후 이상이 없으면 검역증이 교부된다. 검역이 모두 끝났다는 의미다. 검역증을 받은 후 선원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고 화물도 내릴 수 있다. 만약 쥐 서식 흔적이 있거나 감염병원균에 오염돼 살균소독을 해야 하는 경우 등은 가검역증이 교부된다. 가검역증을 받으면 다시 승선검역을 받아야 된다.
이날 채취한 가검물 조사결과는 2~3일 후에 나온다. 선박이 이미 항구를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검역소는 만약 '양성' 판정이 나면 선박과의 연결고리인 대리점을 통해 이를 알린다. 또 전산망에 등록해 전국 검역소와 정보를 공유한다. 전국 검역소는 이 정보를 보고 향후 해당 선박 검역에 활용한다.
노란색 깃발이 내려갔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5시 경이었다. 승선검역은 보통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아젠트 선라이즈는 24일 여수항에 접안한 후 화물을 싣고 중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검역소 사무실에서 만난 경력 2년 차 김보경 검역관은 "침실, 화장실, 주방 등에 대한 검역이 꼼꼼하게 이뤄져 선장이나 선원들이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 번은 무전기로 '김보경 떴다'라고 알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며 웃어보였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총칼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전력 부족은 항상 부딪히는 난제다.
◇밤낮없이 승선검역…"야간수당도 못받아요"
2010년 우리나라 13개 국립검역소와 11개 지소의 인력은 335명이었다. 당시 항공기와 선박 검역량은 19만건이었다. 2015년 검역량은 41만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인력은 오히려 325명으로 줄었다.
국립여수검역소만 해도 16명의 근무자 가운데 검역을 담당하는 검역관은 달랑 7명이다. 1명은 소장, 4명은 서무, 4명은 채취한 가검물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립여수검역소의 연간 검역건수는 9300건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승선검역은 3500건이다. 7명의 검역관이 하루 25.4건의 검역을 실시하고, 이 중 9.5건의 승선검역을 담당하는 셈이다.
한 검역관은 "가장 불편한 것은 아무래도 야간 검역"이라며 "선박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검역하기 때문에 밤이고 새벽이고 검역을 한다"며 고달픔을 토로했다. 국립여수검역소는 야간당직과 주말당직을 팀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야간과 주말 검역을 하는 것이다.
당직을 선 다음날 출근시간은 오전 9시다. 한 검역관은 "검역이 언제 끝났는지 상관없이 다음날 같은 시간에 출근한다"며 "당직을 선 다음날은 정말 피곤하지만 출근해서 좀 쉬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충원은 쉽지 않다고 했다. 현실은 '선박이 국내 들어오는 즉시' 밤낮없이 검역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야간검역은 '응급 환자 발생, 기타 안전사고 등 긴급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실시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야간당직 등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검역관은 "시간외 수당이 4시간밖에 인정되지 않는다"며 "새벽 3시 검역이 필요한 선박이 들어오면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검역하고 퇴근해야 하는데 4시간 외의 시간은 수당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검역의 질이다. 또다른 검역관은 "사람인지라 새벽까지 일하면 아무래도 피곤해 꼼꼼하게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방역에 구멍이 날까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 소장은 "방역 최전선의 방어막이 튼튼해야 우리 국민들이 안전할 수 있는데 그 필요성을 많이 못느끼는 것 같아 아쉽다"며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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