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반쪽'으로 끝난 5·18 33주년 기념식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공연단이 기념공연을 펼치고 있다. 2013.5.18/뉴스 © News1 정회성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박근혜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 여야 지도부, 유공자,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하지만 국가보훈처가 기념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고 '합창'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5월 단체와 진보단체 등이 반발하면서 불참, 결국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여기에 5·18민주화운동이 3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일부 보수 언론매체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왜곡, 폄하되고 있어 올바른 정신계승 및 역사알리기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국립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첫 해 참석한 이후 5년 만이다. 2013.5.18/뉴스1 © News1 정회성

◆ 빛바랜 대통령 참석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이날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33주년 기념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5년 만에 처음 참석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199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기념식에 참석했다. 2003년부터 정부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2003~2007)중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08년 기념식에 참석한 후 이후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 내내 '5·18' 홀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기념식에 공식 참여한데다 기념사를 통해 "매번 5·18 국립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유족들과 광주의 아픔을 느낀다"면서 "이제 5·18 정신이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33주년 기념식은 외형적으로 국가행사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가 방침에 반발해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5·18 관련 단체 회원 및 유가족, 일부 야당 의원들이 불참함에 따라 5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의 의미는 퇴색되고 말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날 기념식에는 현오석 기획재정부장관,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 등 정부 주요인사를 비롯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김한길 민주당 대표,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도 참석했다. 

자치단체장으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비롯해 김범일 대구시장이 영남권 광역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기념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치러진 이날 기념식은 예년 1시간보다 4분의 1정도 짧은 25분여만에 끝나고 말았다.

광주,전남 진보연대, 통합진보당, 광주시민사회단체는 등은 18일 오전 광주시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5·18추모제 진행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2013.5.18/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 파행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33주년 5·18 기념식은 국가보훈처가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 공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넣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예고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기념식이 2003년 정부 행사로 승격된 이후 2008년까지 공식 식순에 포함돼 제창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과 2010년 본행사 식순이 아닌 식전행사 때 공연단 합창으로 편성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지난 2010년 5·18민주화운동 제30주년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도 민요 '방아타령'을 집어 넣으면서 5월단체 등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기념행사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돼 있지 않고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의례'시 애국가 대신 불리는 노래"라며 "정부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제창'의 형태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즉각 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들은 기념식 보이콧을 선언하고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지(구묘역)에서 따로 기념식을 치렀다. 기념식에는 광주전남진보연대, 이석기·김재연 등 통합진보당 의원, 윤봉근 광주시의원 등과 일반시민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안철수 무소속 국회의원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등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국민들 사이에서 역사와 전통"이라며 "국가보훈처가 제창을 거부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제33주년 추모제에서 한 유가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3.5.17/뉴스1 © News1 정회성

◆ 아직도 진행중인 5·18 왜곡

무엇보다 80년 5월 이후 33년이 지났지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와 왜곡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을 시급히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임을 상기시켜줬다.

특히 올해는 일부 종편방송이 '북한군 광주 투입설'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보수성향 인터넷 사이트 등은 5·18을 폄훼하는 글들을 무차별 쏟아내면서 심각한 역사왜곡 양상을 보였다.

TV조선은 지난 13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고 북한에서 온 게릴라가 광주시청을 점령했다는 주장을 다룬 방송을 내보냈다. 채널A는 15일 5·18 당시 광주로 남파된 북한군 출신이라는 탈북자를 출연시켜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 시민군에 섞여 게릴라전을 했다고 주장했다.

보수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게시판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5월 희생자를 호남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홍어'로 비유해 폄훼했다.

이 같은 5·18 왜곡에 대해 정치권과 5월단체, 시민사회는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파렴치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5월단체도 5.18 왜곡은 피해자들에게 다시 고통을 주고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식에서 5·18정신이 국민통합과 행복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내년 5·18 34주년 기념식은 지역을 넘어, 아픔을 넘어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추모하는 경건한 분위기속에서 치러질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