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 핵심 신호 차단으로 암 환자 마르게 하는 '악액질' 잡았다

KAIST-토르 테라퓨틱스, 차세대 RNA 치료 전략 제시

암 악액질 치료 연구 이미지(AI 생성·KAIST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의과학대학원 송민호 교수와 김진국 교수 공동연구팀과 교원창업기업 ㈜토르 테라퓨틱스와 공동연구를 통해 뇌에서 식욕과 에너지 소비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 작동을 억제해 암 악액질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고 2일 밝혔다.

암 악액질은 전체 암 환자의 50~80%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합병증이다. 암세포가 몸의 대사를 교란하면서 음식을 충분히 먹어도 체중과 근육이 계속 줄고 극심한 쇠약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항암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생존율까지 낮아지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치료제는 식욕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수준에 머물러 근육 손실과 대사 이상을 근본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암 악액질의 원인이 몸이 아닌 뇌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암세포가 분비하는 식욕과 에너지 소비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GDF15)이 뇌간의 세포가 신호를 받아들이는 단백질(GFRAL)과 결합하면 '먹지 말고 몸에 저장된 근육과 지방을 쓰라'는 신호가 전달돼 몸이 점점 쇠약해진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GFRAL ASO를 이용한 암 악액질 치료 효과 및 표현형 개선(KAIST 제공) /뉴스1

이를 막기 위해 연구팀은 특정 유전자의 작동을 선택적으로 막는 RNA 기반 유전자 치료 기술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를 이용해 GFRAL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암세포가 보내는 '몸을 말라가게 하라'는 명령을 받는 스위치를 꺼버리는 원리다. 이 치료제는 RNA 단계에서 GFRAL 생성을 막아 암 악액질을 일으키는 신호 자체를 차단한다.

연구팀은 이미 암 악액질이 진행 중인 실험쥐에 이 치료제를 투여했다. 그 결과 근육과 지방 손실이 크게 줄고 무너졌던 대사 기능이 회복됐다. 특히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뒤 치료를 시작했음에도 연구 종료 시점(약 50일) 기준 생존율은 비투여군 20%, Gfral ASO 투여군 90%로 큰 차이를 보여 암 악액질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기존의 암악액질 치료와 연구는 주로 식욕 촉진제를 통해 억지로 식이량을 늘리려 하거나, 근육 자체의 염증을 줄이고 단백질 합성을 유도하는 등 말초 조직 중심의 대증적인 접근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이번 연구는 암 악액질의 근본적인 원인을 뇌(중추신경계)에서 기원한 신호 이상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왼쪽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 홍현정 박사, KAIST 의과학대학원 박민성 박사, 토르 테라퓨틱스 이민희 박사, KAIST 의과학대학원 김진국 교수, KAIST 의과학대학원 송민호 교수(KAIST 제공) /뉴스1

송 교수는 "기존 치료제가 식욕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데 그쳤다면 이번 연구는 뇌간의 핵심 수용체를 RNA 수준에서 직접 표적해 암 악액질의 근본 원인을 억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후속 비임상 연구와 약물 생산·품질관리 체계를 차질 없이 진행해 2030년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개발에 착수하고, 암 환자의 삶의 질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의과학대학원 홍현정 박사, 토르 테라퓨틱스 이민희 박사, 의과학대학원 박민성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게재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