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가 스스로 면역공격 유도하는 항암 플랫폼 개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유천 교수 연구팀

나선형 폴리펩타이드 나노입자 플랫폼 연구 이미지(AI 생성·KAIST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남는다. 국내 연구진이 암세포가 스스로 면역세포의 공격을 유도하고 유전자 치료제까지 전달하는 새로운 항암 플랫폼을 개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화학공학과 김유천 교수 연구팀이 암세포 내부에 강한 스트레스를 일으켜 면역원성 세포사멸을 유도하고 다양한 유전자 치료제를 세포 안까지 전달하는 '나선형 폴리펩타이드 나노입자'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면역원성 세포사멸은 암세포가 죽으면서 주변 면역세포에 위험 신호를 보내 공격을 유도하는 현상이다. 폴리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길게 연결된 고분자 물질을 뜻한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외부 침입자는 효과적으로 제거하지만, 암세포는 다양한 면역 회피 전략을 이용해 면역세포의 감시를 피한다. 이 때문에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은 항암 치료의 난제 중 하나다.

최근에는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세포에 약물과 유전자를 전달하고 면역반응을 활성화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나노소재의 어떤 특성이 세포에 스트레스를 유도하고 항암 면역반응을 활성화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양한 나노입자를 비교·분석해 나노소재의 성분뿐 아니라 나선형으로 감긴 모양이 치료 효과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양전하를 띠는 4차 아민(세포막과 잘 결합하는 화학 구조)과 나선형 구조가 결합하면 마치 나사처럼 세포막을 파고들어 암세포 내부까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성분이라도 나선형으로 감기지 않은 입자는 세포 안으로 거의 들어가지 못했고, 면역반응도 유도하지 못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나선형 나노입자는 일반 세포보다 막의 전기적 특성이 다른 암세포에 우선 침투한다. 이후 세포의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와 여러 세포 소기관의 막을 교란해 암세포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스트레스를 받은 암세포는 죽어가면서 '여기 위험한 세포가 있다'는 구조 신호인 손상 연관 분자 패턴(DAMPs)을 주변으로 방출한다. 이를 감지한 면역세포는 그동안 숨어 있던 암세포를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을 시작한다.

이번 나노입자는 면역반응을 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유전자 치료제를 실어 나르는 운반체 역할도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과 작은 간섭 리보핵산(siRNA)은 세포 안으로 전달하기 어렵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입자는 이를 세포질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구아니디늄(유전자와 강하게 결합하는 화학 작용기)을 최적의 비율로 도입해 혈액 속에서도 입자가 쉽게 분해되지 않으면서 유전자 치료제를 안정적으로 운반하도록 설계했다.

흑색종과 대장암 생쥐 모델에서 면역회피 단백질 'PD-L1'을 억제하는 siRNA를 나선형 나노입자에 탑재해 투여한 결과, 종영 성장이 약 70~80% 억제됐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세포독성 T세포도 종양 내부로 많이 침투해 항암 면역반응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실제 생체 내 복잡한 다세포 환경을 완벽히 모사해 나노 스마트 입자가 종양 심부 조직 및 크로마틴 구조 내로 침투하는 고도화 분석 연구와 임상 진입을 위한 대량 생산 스케일업, 전임상 안전성 검증 후속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차세대 항암 플랫폼 연구팀. 왼쪽부터 KAIST 김유천 교수, 한국교통대학교 이용규 교수, 한양대학교 윤아름 박사, KAIST 이수삼 박사(KAIST 제공) /뉴스1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면역항암과 유전자 치료를 결합한 차세대 치료기술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1저자인 이수삼 박사는 "나노소재의 성분뿐 아니라 나선형 구조 자체가 치료 효과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바이오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바이오머터리얼즈(Biomaterials)​에 온라인 게재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