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푸른 산에 묻힌 붉은 눈물, '산림항공 순직 영웅'들을 기억하라

남성현 국민대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남성현 국민대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대전=뉴스1) 박찬수 기자 = 바야흐로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이 시기가 되면, 필자의 마음은 푸른 가슴을 안고 하늘로 떠난 옛 동료들에게로 향한다. 국립대전현충원의 적막한 묘비 앞에 설 때마다 유독 목이 메어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산불이라는 거대한 화마(火魔)와 사투를 벌이다가 불의의 헬기 사고로 순직한 산림항공 가족들이다. 20여 년 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국장급으로 승진하며 처음으로 기관장을 맡았던 곳이 바로 산림항공본부였다. 산림항공본부는 산불, 산림 병해충, 산악구조 등 우리 국토의 허파이자 국민의 삶의 터전인 산림 재난을 방지하는 최일선의 보루다. 특히 매년 봄철이면 온 국토가 거대한 화약고로 변하고, 산림항공 가족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산불과의 한판 전쟁’을 시작한다.

산불 현장은 결코 녹록지 않다. 매서운 돌풍과 짙은 연무로 앞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기상 조건 속에서, 헬기 조종사와 정비사, 그리고 공중진화대원들은 오직 ‘내 나라의 푸른 숲을 지키겠다’라는 일념 하나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조종사는 거친 기류를 뚫고 헬기를 통제해야 한다. 정비사는 완벽한 정비로 하늘길의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진화대원들은 지상과 공중을 오가며 화선(火線)을 끊어야 한다. 이들이 완벽한 팀워크를 이룰 때 비로소 한 편의 거대한 진화 작전이 성공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사투의 과정에는 늘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헬기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심술 앞에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인재들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산림을 지키다 유명을 달리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산림항공 동료들이 벌써 십여 명에 이른다.

필자가 이후 산림청장의 중책을 맡아 다시 그들의 묘소 앞에 섰을 때, 고인들과 동고동락하며 땀방울을 흘렸던 그 옛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빗발치는 산불 신고 속에서 서로의 무사를 빌며 헬기에 오르던 모습,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검은 그을음을 서로 닦아주며 웃던 안타까운 얼굴들이 떠오르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들이 떠난 후,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가장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고통을 인내해 온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전임 청장이자 선배로서 가슴이 미어지고 울적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전쟁터의 총칼 앞만 호국(護國)이 아니다. 국가의 소중한 자산인 산림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화마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짚어보자. 과연 우리는 이 진정한 애국자들에게 국가로서의 도리와 예우를 다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군인과 경찰, 소방관의 헌신에 대한 사회적 조명에 비해, 산림 최일선에서 목숨을 거는 산림항공 노동자들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국가적 지원은 상대적으로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 우선, 순직자 유가족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체계가 마땅히 강화되어야 한다. 일회성 보상이나 일과성 추모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녀들의 교육과 생계, 그리고 홀로 남은 이들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꼼꼼한 보훈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기동하고 있는 현직 산림항공 가족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예우는 대폭, 그리고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이들은 소방이나 경찰 못지않게 고위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 환경, 위험에 비례하지 못하는 보상 체계 속에서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노후화된 헬기의 신속한 교체와 첨단 안전 장비의 고도화는 물론이고, 현장 인력들의 직급 상향과 위험수당 현실화 등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산과 제도의 한계를 핑계로 이들의 헌신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합당한 대우가 보장될 때, 그들은 비로소 국가가 자신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품고 하늘로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산은 스스로 푸르러지지 않는다. 우리가 매년 누리는 푸른 숲의 녹음 뒤에는, 화마의 불길 속으로 기꺼이 헬기를 몰았던 산림항공 영웅들의 붉은 눈물과 고귀한 희생이 심 있다. 이번 현충일에는 현충원 한편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산림항공 순직자들의 이름을 우리 사회가 한 번씩 더 불러보았으면 한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고 이들의 예우를 격상시키는 것은 이제 살아남은 우리와 국가의 준엄한 책무다. 나라를 위해 푸른 하늘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고개 숙여 깊은 경의를 표한다.

pcs42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