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대전·충남 재통합 이뤄질까?…공론화 과정 최대 과제
정치권 속도전에 시민단체 “공론 과정 없이 속도만 강요”
박찬우 전 의원 “법안 통과시키고 2~4년 유예” 제안 눈길
- 박종명 기자
(대전=뉴스1) 박종명 기자 = 대전시와 충남도의 통합 여부가 병오년 새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1989년 대전시가 직할시로 분리된 후 37년 만의 재통합이 이뤄질지 대전 시민과 충남 도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일방적인 속도전에 시민단체는 물론 시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어 통합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전과 충남 행정구역 통합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4년 11월.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옛 충남도청에서 '통합 자치단체 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과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뜻에서다.
같은 생활, 경제권인데도 국책사업 유치 경쟁 과열 및 산업생태계 중복 투자, 광역교통, 문화, 의료시설 등 늘어나는 광역 행정 사무 처리의 어려움, 인구 감소로 인한 소도시 자생력 약화, 행정 비효율 증가 등을 타개해 경쟁력 있는 메가시티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지를 공표한 것이다.
이후 민관협의체가 출범하고 20개 시·군·구 순회 주민 설명회를 거쳐 지난해 7월 대전시의회 및 충남도의회의 의견청취도 마쳤다. 이어 10월에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등 45명의 명의로 '대전충남특별시 설시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특별법안은 자치권 강화 등 특례 257건, 경제과학 수도 조성, 보칙 등 7장 296개 조문으로 구성됐다. 통합 시 인구는 360만 명, 지역내총생산은 197조원, 수출액은 972억 달러로 인구와 경제 규모에서 비수도권 1위 지방정부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담겼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냉담한 반응에 진전을 보지 못했던 통합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충남과 대전을 모범적으로 통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통합론에 불을 지폈다. 지난 18일에는 여당 대전충남 국회의원과의 간담회에서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 선출이라는 구체적 일정까지 더해지며 메가톤급 이슈로 부상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대전·충남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특별위원회를 가동하고 통합 특별 법안을 2월 중 발의,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특별시장을 선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속도전에 지역 시민단체에 이어 시민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전과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달 22일 공동 성명을 통해 "주민 동의도 공론 과정도 없이 방향을 정해놓고 속도만을 강요하는 현재 모습은 행정 혁신이 아니라 정치적 폭주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숙의와 공론 과정 없는 통합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대전·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지난 달 19일 공동 성명을 통해 "김태흠, 이장우 두 시·도지사의 선언으로 시작된 행정통합 논의가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으로 급속히 정치 일정 안으로 편입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전과 충남의 주민들은 충분한 설명도 선택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지방자치의 구조, 재정 배분, 행정 권한, 지역 정체성 전반을 뒤흔드는 중대한 선택"이라며 "대전과 충남은 서로 다른 도시 구조와 산업 기반, 인구 특성을 지닌 지역으로 통합이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객관적 자료와 전문가 검증, 시민 숙의를 통해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도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충청권 주민 등 회원 6만4500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대전세종부동산풍향계'가 지난 달 28일까지 대전충남 통합 찬반 투표를 벌인 결과 85.2%(2212표)가 반대의 뜻을 표시했다.
대전시의회 홈페이지에도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반대한다는 시민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시민은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 주민 삶의 질, 재산권, 행정서비스의 접근성에 막대한 영항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며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주민의 찬반 투표 없이 시도의회 의견 청취만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취지를 왜곡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현재 통합 논의는 통합 후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적 혼란, 재정적 불균형, 지역별 소외 현상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나 주민 공유 없이 지나치게 속도전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수십 년을 내다봐야 하는 백년대계임에도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추진하는 현재의 방식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졸속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시민은 "대전시에서 직할시로,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뀔 때는 도시 체급에 맞는 이름이 붙여져 불만이 없었지만 대전충남특별시는 말만 특별시지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유명사 대전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초광역 수요와 초광역경제권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대도시권 광역정부와 도농복합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는 광역정부를 하나로 합치는 경우는 없다"며 "두 개를 합쳐 효과가 없으면 비효율적이더라도 너무 많은 비용을 치렀기에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일각에서는 기호지세(騎虎之勢)로 치닫는 정치권의 속도전에 법은 통과시키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전시 행정부시장과 행안부 차관을 지낸 박찬우 전 의원은 지난 달 25일 SNS에 "40년 가까이 분리 운영돼 온 광역자치단체를 통합하는 일은 단순한 행정조정이 아니라 행정서비스 체계, 재정 구조, 지역 정체성까지 포괄하는 구조적 전환"이라며 "이런 결정을 공론화와 주민 동의 없이 밀어붙인다면 통합 이후의 갈등과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행정통합이 급박하게 추진되는 과정은 불필요한 정치적 해석을 불러 온다"며 "국가의 공간 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선거 국면과 분리해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정통합은 주민 동의 절차, 행정재정 통합을 위한 제도 정비, 조직과 인사 체계 개편에 최소 몇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며 대전충남통합특별법을 통과시키되 최소 2년 이상 바람직하게는 4년의 유예기간을 둘 것을 제안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현행 체제대로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선출하고, 충분한 준비와 합의를 거친 뒤 차기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자는 것이다. 박찬우 전 의원은 "유예기간 동안 대구·경북, 광주·전남, 울산·경남 통합을 함께 추진하고 초광역 행정체계에 걸맞은 권한 이양과 재정 분권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국가 균형발전은 정치적 구호나 선거 전략이 아닌 만큼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의 깊이"라고 강조했다.
대전과 충남의 통합 논의는 여야가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앞서거니 뒷서거니 나선 형국이지만 대전 시민과 충남 도민의 공론화 소외 논란을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통합 추진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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