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에서 광복군까지”서산 독립운동 60년 항전의 발자취

김상기 충남대 명예교수 “광복은 선물 아닌 항일투쟁의 결과”
서산시·독립기념관, 보현산 만세운동 가담자 40명 신규 발굴

지난달 30일 서산문화원 3층 대공연장에서 김상기 충남대 명예교수께서 서산학 시민강좌 ‘서산 독립운동의 뜨거운 역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재판매 및 DB금지)2025.10.1 김태완 기자/뉴스1

(서산=뉴스1) 김태완 기자 = “서산의 독립운동은 1895년 의병에서 출발해 계몽·의열·학생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와 광복군으로 이어진 ‘지속성·다양성·투쟁성’의 역사입니다.”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30일 서산문화원에서 열린 ‘서산학’ 시민강좌에서 이같이 말하며, “광복은 연합국의 선물이 아니라 누적된 항일투쟁의 결과”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홍주의병과 해미·서산 일대 의병 봉기, 국채보상운동 참여, 3·1운동의 확산, 학생운동과 비밀결사 활동, 임시정부 및 광복군 합류까지 서산권 독립운동의 맥을 짚었다. 특히 음암면 유계리 출신 김용환 선생이 조직한 ‘대동회’를 통해 군자금을 전달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민들의 작은 헌신들이 결국 독립의 불씨를 키워냈다”고 평가했다.

서산시도 최근 독립기념관과 협업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시청 문서고에서 발견된 ‘수형인명표 폐기목록’ 등 일제 공문서를 통해 1919년 4월 8일 운산면 보현산 ‘횃불 만세운동’ 가담자 37명의 실명을 확인한 것이다. 여기에 추가 문헌조사로 3명을 더 발굴해 총 40명을 국가보훈부 포상 추천 명단에 올렸다. 태봉리 19명, 용현리 18명 등 마을 단위 참여가 문서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교수는 “일부 지역 출신들은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미 전략사무국(OSS-공수특전사) 훈련을 받고 본토 투입까지 준비했을 정도로 투쟁의 강도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서부 충남권은 유학 전통과 의병의 기억, 황해를 통한 교류와 탈출 경로가 맞물리며 강한 항일 기풍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향후 과제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미포상자 추가 발굴과 증빙 정리, 국가보훈부 포상 연계를 위한 행정 지원, 청소년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요약본 발간, 보현산 만세봉·해미 3·1운동지 등을 연결하는 답사 코스 조성, 인물·사건·지도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강연을 마치며 “지역의 독립운동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라며 “서산시민의 자긍심을 키우는 방향으로 보훈사업이 이어질 때 광복 80주년의 의미가 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종신 서산문화원장도 “서산의 독립운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대에 전하는 일에 힘쓰겠다”며 “앞으로도 시민과 함께 역사를 기억하고 확산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보현산 만세운동은 서산 시민들의 항일 의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라며 “이번 발굴 성과를 계승해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보훈 행정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cosbank34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