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쑥대밭 된 농장" 아산 염치읍 주민 진흙 묻은 집기 챙기며 눈물

'380㎜ 폭우·제방붕괴·만조' 겹쳐 물바다…집에도 못 돌아가
한우거리 식당은 영업중단…"피해 반복, 하천 준설 제대로 해야"

18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곡교리 고불교 일대가 지난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폭우로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차량이 물위에 떠 있다. 2025.7.18/뉴스1 ⓒ News1 이시우 기자

(아산=뉴스1) 이시우 기자 = 38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충남 아산시 염치읍 곡교리. 이틀간 퍼붓던 비가 그쳤지만 김응주 씨는 집으로도 농장으로도 돌아가지 못했다. 18일 오후 김 씨는 아산시 곡교천을 따라 난 둑길에 서서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세워진 캠핑카에는 가족들과 개 3마리가 함께 했다.

손가락으로 논 건너편을 가리킨 김 씨는 "저기서 농사 짓고 있어요. 빗물에 잠기기 전에 농장에서 쓰던 캠핑카를 끌고 대피해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동안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농장 옆 둑이 무너질 것 같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요. 결국 둑이 무너지면서 주변이 모두 물에 잠겼다"고 토로했다.

농장은 쑥대밭이 돼 있었다. 성인 키 높이의 포도, 복숭아나무 꼭대기까지 진흙이 묻어 있었다. 햇고추를 숙성시키던 고추 건조기는 원래 있던 곳에서 5m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됐고,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저온 창고도 한참을 밀려 나와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제외한 모든 집기류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김 씨 아내는 "물이 3m 높이까지는 찼을 거예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장독대는 저기 가 있네", "저 양파는 저온 창고에 있던 건데"라며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을 보물찾기하듯 찾았다.

아산 염치읍 곡교리의 제방이 붕괴돼 주민이 건너가지 못하고 있다. 2025.7.18. /뉴스1ⓒNews1 이시우 기자

염치읍 곡교리·석정리 일대는 지난 17일부터 내린 폭우로 물바다가 됐다. 이 지역은 지대가 낮아 침수피해가 잦은 곳이다.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돼 제방 정비와 펌프장이 신설됐지만 기록적인 폭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17일 오전 만조가 된 바닷물이 유입되고, 인근 염치 저수지가 방류를 시작하면서 곡교천의 한계수량을 넘어섰다. 제방을 넘어 역류한 빗물은 결국 제방까지 무너뜨리며 마을을 집어 삼켰다.

염치읍 한우거리에 무리지어 있는 식당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점심 시간, 식당 앞에는 식탁과 의자 등 집기류 쌓여 있었다. 식당 안에서는 남은 물기를 쓸어내느라 분주했다.

이 모 씨(43)는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면서 냉장고 등도 훼손이 돼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영업을 재개하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식당 인근 우체국에도 빗물이 들이쳐 금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과 서류 등이 침수되기도 했다.

18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한우거리 식당 직원들이 지난 폭우로 물에 잠겼던 가재도구와 내부 집기류를 정리하고 있다. 2025.7.18./뉴스1 ⓒ News1 이시우 기자

마을 곳곳에는 고인 물이 빠지지 않으면서 통제가 이어져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잦았다.

마을 주민들은 반복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곡교천 준설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택근 씨는 "곡교천은 평상시에도 흙이 많이 쌓이지만 준설을 하지 않는다"며 "비가 많이오고 만조가 겹치기도 했지만 바닥이 높아져 범람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아산에서는 최고 421㎜ 넘는 폭우로 주택 100곳이 물에 잠기고 상가와 공장 34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안전 시설로 대피한 404명의 주민 중 280여 명이 여전히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또 논 861㏊ 가 물에 잠기는 등 모두 920 ㏊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issue7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