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혁하려던 ‘기묘명현’…그들이 꿈꾼 유토피아는?
임도혁 on충청 대표 ‘기묘사화, 피의 흔적’ 발간
발로 뛰며 찾아낸 유적 쉽고 재미있게 소개…후손들 목소리도 담아
- 최일 기자
(대전=뉴스1) 최일 기자 = “기묘사화라는 칼날 아래 개혁 의지가 중도에 무참하게 꺾였음에도 그들은 왜 조선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됐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전국 곳곳을 발로 뛰었습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는 정치적 반대파에게 한꺼번에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으로 사림(士林)이라는 신흥세력이 성장하면서 기득권세력인 훈구파(勳舊派)와의 갈등으로 발생했다.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戊午士禍),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己卯士禍),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기묘사화는 성리학적 이상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사림이 수구세력의 저항으로 화를 입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신구세력 간 권력투쟁 성격이 강한 다른 사화와 차별된다.
임도혁 on충청 대표(전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가 성리학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기묘명현(己卯名賢,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선비들)의 흔적을 찾아 ‘기묘사화(己卯士禍), 피의 흔적-사림천하(士林天下) 이렇게 만들었다’(도서출판 이화)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는 기묘사화 관련 인물 100여명 중 △성리학 유토피아 건설에 애쓴 순교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서릿발 같은 기개를 지닌 박상(朴祥, 1474~1530) △당대 최고의 인재 김식(金湜, 1482~1520) △백정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 끝까지 지켜준 병조판서 이장곤(李長坤, 1474~미상) 등 16명을 추려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이 책의 특징은 기묘사화를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접근해 기묘명현과 그들의 흔적을 결합시킨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기묘사화는 조선을 성리학 이상사회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개혁정책을 펴나가던 젊은 관료들이 중종과 훈구대신들의 반격을 받아 일시에 화를 입은 사건이어서 언뜻 그들의 삶은 모두 단순하고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이 조광조와 500년간 한방에서 제삿밥을 같이 먹게 된 사연 △죽음을 무릅쓴 안처순(安處順, 1492~1534)의 동료들에 대한 헌신 △김정(金淨, 1486~1521)의 제주 1년 살기 △김구(金絿, 1488~1534)의 술에 대한 과거시험 답안 △소쇄원(瀟灑園) 조성에 얽힌 네 사나이의 우정 △주초위왕(走肖爲王)의 허구성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끌어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전국 곳곳의 유적지를 일일이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지금껏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들의 삶의 흔적은 물론 후손들의 목소리도 책에 담았다.
12일 오후 4시 대전 서구 둔산동 대교빌딩 다목적홀에서 ‘기묘사화, 피의흔적’ 출간을 기념해 북콘서트를 여는 저자는 “주제가 어렵고 무거운 만큼 재미있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전국을 누비며 발로 찾은 여러 구슬을 잘 꿰어 보배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한편 1961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 임 대표는 대전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 기자·충청취재본부장, ㈔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인터넷 매체 ‘on충청’ 발행·편집인을 맡고 있다.
choi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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