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피해 문경 산속 피신' 조선 신자, 프랑스 신부 살려

박상근 마티아, 프랑스 깔래 신부 피신시키고 순교
대구가톨릭대 박물관 11월 27일까지 특별전

대구가톨릭대 박물관 특별전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기억되다-박해가 맺어준 프랑스 신부와 조선 신자의 우정'이 오는 11월 27일까지 열린다. ⓒ 뉴스1 공정식 기자

(경산=뉴스1) 공정식 기자 = "신부님이 알지도 못하는 이 산길을 혼자 가시게 둘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결코 동의할 수 없어요" -박상근 마티아

"내가 말한 대로 할 것을 명령하오. 여기 마티아가 가지고 온 과일이 있으니, 반을 내게 주고 나머지는 가지고 가시오. 신부의 말에 순종하시오" -깔래 신부

1866년 병인박해 때 경북 문경에서 산속으로 피신하던 천주교 신자 박상근 마티아와 깔래 신부는 고난의 길을 앞두고 옥신각신했다.

천주교 탄압을 피해 쫓겨 다니다 산속에서 질병과 굶주림에 쓰러져 죽는 이가 부지기수였지만, 서로를 걱정하고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대구가톨릭대 박물관 특별전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기억되다-박해가 맺어준 프랑스 신부와 조선 신자의 우정'이 오는 11월 27일까지 열린다. ⓒ 뉴스1 공정식 기자

병인박해 속에서 피어난 프랑스 신부와 조선 신자의 인연을 조명하는 특별전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기억되다-박해가 맺어준 프랑스 신부와 조선 신자의 우정'이 대구가톨릭대 박물관에서 11월 27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19세기 조선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프랑스 선교사 깔래 신부(Nicolas Adolphe Calais, 1833~1884)와 복자 박상근 마티아(1837~1867)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시는 조선 선교 길에 오른 깔래 신부와 그가 소중하게 여긴 조선, 병인박해라는 고난의 시대에 만난 조선인 박상근의 천주교 신앙과 꿈, 고독과 연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조선의 현실과 삶의 기록을 깔래 신부가 남긴 친필 편지로도 보여준다.

1833년 프랑스 끄리옹에서 태어난 깔래 신부는 1860년 7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곧바로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된다. 이듬해 4월 조선 땅을 밟은 그는 '강(姜)' 씨 성을 쓰며 경상도 서부지역에서 5년간 선교 활동을 펼쳤다.

조선은 1866년(고종 3년)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박해를 시작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탈출해 중국으로 피신한 깔래 신부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그러는 사이 병약해져 1869년 프랑스로 귀국했다.

귀국 후에도 조선을 그리워한 그는 베네스트로프 본당 사목, 트라피스트 수도회 입회, 시토회 수도원 지도신부를 거쳐 1884년 5월 22일 모벡의 수년원에서 선종했다.

특별전에서는 발에 장미를 감은 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깔래 신부의 임종 사진도 전시된다.

대구가톨릭대 박물관 특별전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기억되다-박해가 맺어준 프랑스 신부와 조선 신자의 우정'이 오는 11월 27일까지 열린다. ⓒ 뉴스1 공정식 기자

박상근 마티아는 조선 후기 경북 문경에서 관청 아전(衙前·하급 관리)으로 일했으며, 천주교를 받아들인 후 교리에 따라 신앙인의 길을 걸었다고 전해진다. 위험에 처한 신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박해받는 이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줬다.

그는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좁쌀을 구하러 가던 중 문경 한실(현 문경시 마성면 인근 마을)에 숨어 있던 깔래 신부를 찾아가 자기 집으로 피신시켰으나 체포 위험이 커지자 두 사람은 다시 한실로 몸을 피했다.

한실 교우촌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이르렀을 때, 깔래 신부는 마티아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한다. 그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티아는 눈물을 흘리며 신부 곁을 떠날 수 없다고 간청했다.

결국 신부의 설득과 명령에 순종하고 집으로 돌아간 박상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숙모 홍 마리아, 친척 박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돼 상주에서 혹독한 옥살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천주교를 봉행한다"며 위협에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1867년 1월 서른의 나이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순교했다. 시신은 가족들에게 수습돼 고향에 안장됐다.

프랑스인 깔래 신부의 자필 편지 가운데 한글 표기가 눈에 띈다. ⓒ 뉴스1 공정식 기자

박물관에는 깔래 신부와 박상근 마티아의 우정을 담은 여러 자료가 전시된다. 선교사들이 조선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착용한 갓, 짚신, 두루마기가 눈길을 끈다. 또 병인박해 관련 그림은 기록과 문헌이 담아내지 못한 박해의 현장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전시에는 깔래 신부가 1856년 낭시교구 신학생 시절부터 선종하기 직전인 1883년까지 고향 크리옹으로 보낸 편지도 공개된다. 편지에는 '무당', '찬미예수', '하날의 계신 우리드의 아비신(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등 당시 조선 교회에서 사용한 옛 한글 표현이 담겨 있다.

깔래 신부와 박상근 복자가 이별한 지 158년이 지난 2024년, 깔래 신부의 형 도미니크와 박상근 복자의 둘째 형 박왕근의 후손들이 마원성지에서 만났다.

두 집안 후손의 만남은 오랜 세월 묻혀 있던 깔래 신부와 박상근 복자의 인연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전시에서는 이들의 사연도 소개된다.

채창권 대구가톨릭대 박물관 학예사는 "병인박해로부터 160년이 지난 지금 깔래 신부와 박상근 마티아를 통해 천주교의 가슴 아팠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우정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귀 기울여 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7일까지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30분,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3시다.

jsg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