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수해에 쫓겼는데 돈 없어 또 나갈 판"…안동 이재민 '삼중고'
세입자·장애인·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 주거 대책 '막막'
임시주택 1500만원에 이전·설치비까지 3000만원 안팎
- 신성훈 기자
(안동=뉴스1) 신성훈 기자 = "산불로 살던 집을 잃고 농사지을 땅까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돈이 없어서 임시주택에서도 나가야 할 판입니다."
지난해 경북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안동지역 이재민들에게 제공된 임시 조립주택의 매각이 추진되면서 세입자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가 새로운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1일 안동시와 산불 피해 주민 등에 따르면 산불 이후 안동지역 이재민에게 공급된 임시 조립주택은 모두 982동으로, 현재 603동이 사용되고 있다.
안동시는 임시주택 수의 매각 신청을 지난달 31일 마감하고 현재 신청 현황을 파악 중이다. 매입 대상은 오는 6일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주민들이 안내받은 임시주택 매입 가격은 1동당 1500만 원 안팎이지만, 현재 임시주택이 설치된 부지를 계속 사용할 수 없다면 주택을 옮길 땅을 확보해야 한다.
또 운송·크레인 비용과 기초·바닥공사, 전기, 상·하수도 및 오폐수 시설 등 주택 매입과 이전·설치 등에 모두 최소 3000만 원 안팎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 여건에 따라 비용은 달라질 수 있다.
가장 막막한 것은 산불 이전부터 자기 소유의 집이 없었던 세입자들이다.
이들 역시 산불로 살던 집과 가재도구, 생활 터전을 잃었지만 불에 탄 건물의 소유자는 집주인이어서 주택 자체의 재산 피해 보상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일부 주민들은 남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산불 이후 마을을 떠나면서 주거뿐 아니라 농지와 이웃 등 기존 생활권까지 잃었다.
산불 피해 주민의 가족인 40대 A 씨는 "돈이 없어 세를 살고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던 사람들도 있다"며 "형편이 되는 주민들은 다른 거처를 마련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사람 중에는 세입자나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주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에게 갑자기 수천만 원을 마련해 집을 사라고 하면 어디에서 그 돈을 구하겠느냐"고 호소했다.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소득뿐 아니라 주택 등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수급 여부와 급여액을 결정한다. 임시주택을 본인 명의로 취득할 경우 기존 소득·재산 등에 따라 급여액이나 수급 자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매입을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집중호우 당시 안동시 일직면 일부 임시주택이 침수되거나 물살에 밀려나는 피해가 발생하면서 일부 이재민이 인근 다른 임시주택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는 상황도 발생했다.
산불로 원래 살던 곳에서 한 번 떠난 데 이어 수해로 또다시 이주한 주민들에게 임시주택 매각이라는 또 하나의 주거 문제가 닥친 셈이다.
주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임시주택을 매입하지 못했을 경우다.
안동시는 경제적 사정 등으로 임시주택을 매입하지 못한 가구 중 계속 거주해야 할 사유가 있는 경우 일정 기간 거주를 연장하고, 이후 남은 가구들을 별도 장소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럴 경우 경제적 여력이 있는 주민들은 빠져나가고 세입자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고령자 등 취약계층만 한곳에 남게 되면서 기존 생활공동체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재민 B 씨(60대·남)는 "산불 때문에 한 번 쫓겨나고 일부 주민들은 물난리 때문에 또 옮겼는데 이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며 "공짜로 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장기 분할납부나 저리 융자 등을 통해 다시 일어설 시간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제도상 분할납부 방식은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안동시의 설명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매입하지 않은 가구 가운데 계속 거주해야 할 사정이 있는 경우 거주기간을 연장하고 향후 별도의 장소에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현재 계획하고 있다"며 "취약계층에 매입 대금을 장기 분할 납부하도록 하는 방법은 현행법상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소득과 재산 상황에 따라 매입 후 생계비 책정이 달라질 수 있으니 임시주택 매입 시 꼭 상담받고 매입하길 권장한다"고 말했다.
지역 봉사활동단에 대표 C 씨는 "산불 이전부터 집과 토지 등 재산을 보유했던 주민과 세를 살며 남의 농지를 빌려 생계를 이어온 주민들은 재난 이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다르다"며 "그만큼 세입자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별도의 주거 회복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sh484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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