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부하고 싶어예"…향학열 태우는 87세 박선민 할머니
검정고시·수능 '최고령' 타이틀…이젠 대학원 목표
- 공정식 기자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어예. 생이 끝날 때까지 배우고 싶어예"
1939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선민(87)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자랐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시절, 배움에 대한 미련은 한평생 박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6·25전쟁이 끝난 후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탓에 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박 할머니는 환갑이 지나 자식들 다 키운 후에야 배움에 대한 설움과 목마름을 풀기로 결심하고 '독학'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6일 박 할머니가 사는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요양보호사에게 '박 할머니를 아느냐'고 묻자 "알다마다요. 할머니 유명하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저도 할머니 집 구경하고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 집에 들어사자 현관문 옆 작은 공부방 벽면에는 20년 넘게 공부한 흔적이 훈장처럼 걸려 있었다.
"고졸 검정고시 참 어렵데예. 문제도 어렵지만 국어 지문이 길어서 처음엔 지문 2개 읽고 나니 시험시간이 끝났심더."
2000년대 초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시험 기회가 1년에 딱 한 번이었다. 공부해야 할 과목도 9개인데 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을 받으면 과락으로 낙방이라고 한다.
박 할머니는 재수 끝에 2003년 초졸, 2005년 중졸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한 후 곧장 고졸 시험에 도전했다.
고졸 검정고시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1년에 2번씩 10번 시험을 본 끝에 2018년 합격증서를 손에 쥐자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었다.
박 할머니는 합격 당시 대구·경북에서 '최고령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에 도전한 것이다. 수능 때도 '최고령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수능 점수는 잘 몰라. 부끄럽지. 근데 교육청 직원이 '공부 잘하셨다' 카더라."
2019년 대구 수성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할머니는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사회복지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또 다시 수능을 봤다. 4년제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나이도 잊은 채 하루 3~4시간 쪽잠을 청하는 수험생 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건강이 나빠져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가 심했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가족 몰래 수능 원서를 제출, 집 근처 한 여고에서 수능을 치렀고 2025년 마침내 대구대 글로컬라이프대학 휴먼케어창의학부(실버·복지상담학 전공)에 편입학했다.
4학년으로 진학하는 박 할머니는 40분 남짓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대 대명동캠퍼스까지 통학한다.
고령화사회의 노인심리와 고부갈등 등 다양한 실버상담을 배우는 그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살아온 날을 돌아보는 것 같아 공부할수록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이젠 영어도 문제없다"고 했다.
웃음치료사, 행복코칭 지도사,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등 여러 자격증도 딴 할머니는 70살 나이 차이가 나는 새내기부터 50~60살 터울 만학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우들이 "왕언니~라고 불러줘 고맙다"고 했다.
올해 졸업반인 박 할머니는 지금 '대학원 진학'이라는 새 목표를 세웠다.
박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생각이 없다.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한다는 공부를 그저 열심히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jsg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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