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문과 지인 기억으로 되살린 '사기범 조희팔'
- 배준수 기자
(대구ㆍ경북=뉴스1) 배준수 기자 = 조희팔은 희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뒤 언제, 어떻게 중국으로 도주했을까.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그는 도대체 죽었을까, 살아있을까.
'조희팔이 마약쟁이'라는데, 사실일까.
조희팔을 가까이서 지켜본 외조카와 사기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은 조력자 등의 판결문, 20여년 전부터 그를 잘 아는 지인, 사기 피해자 모임에서 수집한 정보 등을 토대로 조희팔과 관련된 이런 의문들을 정리해본다.<편집자 주>
◆홀연히 사라진 조희팔
2008년 12월10일 오전 7시께.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격열비열도(島)에서 서쪽으로 60마일가량 떨어진 공해상.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58)의 외조카 유모(46)씨는 중국 헤이룽장성에 거주하는 조선족 김모씨를 통해 구한 30t급 중국 어선을 타고 12월8일 오후 6시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항구를 출발해 40시간만에 서해 공해상에 도착했다.
이틀 전인 12월8일 오후 8시께 조희팔은 부산 남구 민락동에서 룸살롱 업주 J씨와 유씨의 친구 등 조력자들과 함께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충남 태안군 남면에 있는 마검포항으로 향했다.
마검포항에서 양식업을 하는 어부 박모(48)씨와 채모(55)씨가 3000만원짜리 모터를 장착한 보트 '동진호'에 조희팔을 태웠고, 공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국 어선을 타고 다롄에 있는 항구로 입항하면서 밀항에 성공했다.
유씨는 2008년 10월 외삼촌인 조희팔로부터 밀항 지시를 받았고, 11월 중순까지 2차례에 걸쳐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어부 박씨와 채씨는 훗날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2010년 7월15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혐의를 벗었다. 태안해경에 조희팔의 출항계획을 신고한 점 등을 참작받아서다.
■조희팔은 죽었다?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밀항에 성공한 조희팔은 수시로 거처를 옮겨다니면서 돈을 물쓰듯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복'이라는 조선족 이름으로 신분세탁도 했다.
조희팔의 오른팔 강태용(54)이 지난 10일 중국 현지에서 검거될 때 함께 있었던 조희팔의 외조카 유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촌은 아파트를 옮겨 다니면서 한국의 자금관리인이 보내주는 돈으로 고급차량에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시고 다녔다"고 털어놨다.
'교도소에 갇혔던 2010년 초부터 1년여를 빼놓고는 조희팔과 줄곧 함께 지냈다'는 유씨는 "2011년 12월18일 오후 9시께 조선족 운전기사로부터 스크린 골프를 치러간 삼촌이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 왔고,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며 "삼촌은 분명히 죽었고, 삼촌의 오른팔 강태용은 정·관계 로비 장부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희팔의 셋째형(67)도 지난 15일 뉴스1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막내동생인 희팔이는 분명히 죽었다. 경북 칠곡군의 공원묘지에 있는 납골묘가 증거"라고 주장했다.
■조희팔은 '마약쟁이'?
뉴스1에 제보 형식으로 조희팔을 만났던 기억을 털어놓은 50대 후반의 A씨는 "30대 중반이던 20여년 전 조희팔은 대구 수성구 상동 들안길 인근의 반지하에서 월세를 살았고, 내가 월세 15만원을 대신 내줄 정도로 가난했다"고 했다.
조희팔은 사기 도박과 히로뽕에 중독된 B씨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A씨는 B씨를 통해 조희팔을 알게 된 인물이다.
그는 "B씨의 아파트에 올라가서 조희팔이 주사기로 히로뽕을 맞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조희팔은 마약쟁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그로부터 10년 뒤 대구 달서구 월배초교 인근의 2층 사무실에서 조희팔을 다시 만났는데, 다단계 회사가 50% 정도 무르익은 상태로 잘 나가고 있을 때"라며 "조희팔이 2008년 중국 밀항 후 B씨가 갑자기 30억원대의 부자가 돼 외제차를 타고 골프를 치러 다녔는데, 지인들에게 물어보니까 조희팔이 달러로 30억원을 보내준 것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희팔에게 마약을 주고 30억원을 챙긴 B씨도 조사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가난한 시골아이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조희팔 사기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바실련)에 따르면 경북 영천의 한 시골에서 태어난 조희팔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홀로 대구로 향했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조희팔은 냉동식품 도소매업체에서 일하기도 했고, 20대 때는 도박판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조직폭력배들과도 어울렸다.
친형이 일하던 국내 최초의 다단계 사업체를 통해 다단계를 접하고 배웠으며, 2004년 '오른팔'인 강태용 등과 함께 (주)BMC라는 의료기 임대 다단계 업체를 차린 뒤 사업체를 전국으로 늘려 고수익을 미끼로 3만여명으로부터 4조원을 챙겨 중국으로 달아났다.
2008년 10월 사기 행각이 들통나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고 있는 조희팔에 대해 바실련 측은 "조희팔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희팔 수사를 맡고 있는 대구지검은 "조희팔의 다단계 회사 행정부사장이며 사실상 2인자로 행세한 강태용이 알고 있는 부분이 수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조희팔의 생사 여부와 정·관계 로비 실체, 은닉자금과 관련한 내용 등은 강태용을 통해 상당 부분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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