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호르무즈 위기 넘긴 HMM…이제 부산서 100년 준비할 때"
전정근 HMM해상노조 위원장 "선박 26척 중 24척 안전 이동"
수리 마친 '나무호' 출항 대기…"해상 인력은 국가 물류 지키는 자산"
- 임순택 기자
(부산=뉴스1) 임순택 기자 = 전정근 HMM해상노조 위원장이 HMM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기적'이었다.
"HMM은 신이 함께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수없이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기적처럼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0년 연속 적자를 내며 생존을 걱정하던 회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다. 물동량 폭증이라는 뜻밖의 파도가 밀려왔고, 선제적으로 늘려놓은 선대가 힘을 발휘했다. 최근에는 벌크선 사업 투자로 다음 성장 동력도 마련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이 과정을 단순한 행운으로만 보지 않았다. 위기 때마다 회사와 구성원들이 준비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다시 HMM을 시험하고 있다. 이번 무대는 세계 원유 수송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물류망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란의 해협 통제 위협이 현실화할 경우 선박과 선원의 안전은 물론 세계 해운 운임과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지난 4일 뉴스1과 만난 전 위원장은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인근 해역에 있던 선박 26척 가운데 24척이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해협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남은 선박 가운데 하나인 HMM 소속 '나무호'도 출항 채비를 마쳤다. 나무호는 현지에서 점검과 수리를 모두 끝낸 뒤 두바이 인근 해상에서 통항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전 위원장은 "선박 수리는 모두 마쳤고 자력 출항도 가능한 상태"라며 "다만 해협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만큼 통항 신호를 예의주시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출항 시점을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HMM해상노조 위원장으로 처음 선출된 것은 2020년이다. 회사가 오랜 적자의 터널을 막 빠져나오려던 시기였다. 이후 세 차례 위원장을 맡으며 해운업 호황과 물류대란, 임금 갈등을 모두 겪었다.
가장 큰 고비는 2021년이었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해상 직원들의 처우는 제자리라는 불만이 쌓이면서 파업 직전까지 치달았다. 노사는 충돌 끝에 '임금 조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3년간 논의를 이어간 결과 임금 조정 기준을 세우고 상시적인 성과급 제도도 마련했다.
전 위원장은 이를 HMM이 만든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꼽았다.
"노사가 매년 같은 문제로 다투는 구조에서는 회사도, 구성원도 미래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제도화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였습니다. 회사가 성장하면 그 성과를 구성원과 나누고, 구성원은 다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그의 시선은 이제 부산을 향하고 있다.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을 단순한 주소 변경이 아니라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한 체질 개선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 위원장의 생각이다.
부산에는 HMM의 100% 자회사인 HMM오션서비스가 있다. 해상 직원 관리부터 선박 정비와 운항 지원까지 바다 위 사업의 핵심을 책임지는 회사다. 전 위원장은 본사와 HMM오션서비스가 가까운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일 때 HMM의 해운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 위원장은 "해상 직원을 관리하고 선박 정비를 책임지는 HMM오션서비스는 단순한 자회사가 아닙니다"라며 "선박의 안전 운항을 떠받치는 핵심 조직입니다.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해 두 조직의 인프라가 결합하면 의사 결정은 빨라지고 현장 대응력도 훨씬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업의 경쟁력을 배의 규모나 운임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선박을 움직이고 위기의 바다를 통과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한민국 수출입 물동량의 99.7%는 바다를 통해 이동한다. 하지만 수개월씩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국가 물류의 최전선을 지키는 해상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전 위원장은 지적했다.
"선원의 처우는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고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한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선원뿐 아니라 오랜 기간 빈자리를 감당하는 가족까지 존중하고 지원해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해양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노조위원장이지만 사측에 대한 감사도 숨기지 않았다. HMM은 최근 기존 선박 통신망인 '넥서스 웨이브'에 스타링크를 추가해 해상에서도 두 개의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 과정에서도 선박과 승무원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게 노조 측의 평가다.
전 위원장은 "지금 HMM은 노사나 직급의 경계를 넘어 구성원 모두가 회사를 더 좋게 만들자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며 "해상 승무원의 어려움을 헤아려 통신 환경을 개선하고, 중동 위기 속에서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사측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HMM의 부산 이전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항해를 준비하는 일이다. 적자의 바다를 건너온 HMM이 호르무즈의 파고를 넘고, 부산에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limst6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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