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레슬링 국가대표 유망주들 열악한 환경 딛고 ‘쑥쑥’

부산 체육중·고등학교 레슬링 유망주 학생 선수들과 감독들이 함께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재훈 감독교사, 유재민(17) 학생,  안도현(16) 학생, 유 건(16) 학생, 권재창 감독교사. ⓒ News1 이승배 기자
부산 체육중·고등학교 레슬링 유망주 학생 선수들과 감독들이 함께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재훈 감독교사, 유재민(17) 학생, 안도현(16) 학생, 유 건(16) 학생, 권재창 감독교사. ⓒ News1 이승배 기자

(부산ㆍ경남=뉴스1) 조아현 기자 =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한국을 빛내고 싶습니다. 먼 훗날 저처럼 어린 친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레슬링 선수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부산체육중·고등학교의 레슬링 유망주들이 주위의 보살핌 속에 열악한 환경을 딛고 차세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맹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3월 열리는 회장기 전국레슬링대회에서 각 체급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올림픽 무대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추운 날씨에도 강도높은 동계훈련에 한창이었다.

이 학교는 부산 레슬링계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 유망주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3년간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고 15일 밝혔다.

뉴스1은 비인기종목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돌진하는 예비 국가대표 유망주들을 만나봤다.

◇발목뼈 골절 부상 이겨내고 역전승…46kg급 레슬링 금메달

2015년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손에 쥔 부산체육고등학교 레슬링 선수 안도현(16)군.

도현 군은 중학교 1~2학년 동안 전국 대회에서 큰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학교 생활과 훈련 만큼은 단 한 번도 빠진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열혈 선수였다.

그러던 지난 2014년 10월 안 선수는 선배 선수와 스파링 훈련 도중 발목이 돌아가면서 발목뼈 다섯 군데가 부러지는 큰 골절 부상을 입었다.

부산 양정모체육관에서 진행되는 부산체육중고등학교 레슬링부 동계훈련에서 안 선수가 동료 선수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 News1 이승배 기자

업친데 덥친 격으로 슬럼프까지 찾아왔다. 이때 다시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된 사람은 바로 스승인 손영태 감독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2004년부터 레슬링 종목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손 감독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던 안 선수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손 감독은 "내가 너한테 꼭 금메달을 안겨줄게"라고 말하며 "나만 믿고 따라와라. 3개월 동안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해보자"고 격려하면서 제자를 부둥켜 안았다.

반 년은 족히 걸린다던 힘든 재활 훈련을 3개월 만에 끝내고 2015년 '제 44회 전국소년체육대회' 46kg급 시합에 오른 안 선수는 자신에게 두 번의 고배를 마시게 한 라이벌을 운명처럼 결승에서 마주했다.

안도현 학생 선수와 손영태 감독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News1 이승배 기자

워낙 타고난 힘을 가진 라이벌 선수는 초반부터 안 선수를 거세게 몰아 부쳤다. 고전이 거듭되던 상황, 양 선수 모두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을 때 시합 종료 5초를 남기고 안 선수가 허술한 상대의 틈을 파고 들었다.

마지막 순간 상대를 끝까지 밀어부친 안 선수는 1점 차로 상대를 누르고 역전승을 거뒀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관중들도 박빙의 승부가 역전승으로 끝나자 환호를 질렀고 안 선수는 눈물을 쏟으며 포효했다.

2012년 회장기 예선때 패한 라이벌에게 지난 해 또 다시 8점 차로 테크니컬 패를 당한지 2개월 만이었다.

안 선수는 "마지막 역전승을 거둔 순간 눈물만 나왔다"며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선생님만 눈에 들어와 미친 듯이 달려가서 안겼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스승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돌봐야할 학생들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신경쓰고 챙겨주기 때문이다"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평소 과묵하기로 유명한 (왼쪽)유재민(18),(오른쪽)유 건(16) 형제는 말없이 서로를 챙겨준다. 고등부 레슬링 감독 (중간)정재훈 교사와 어깨동무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News1 이승배 기자

◇ 레슬링 유망주 형제, 어려운 가정 환경 딛고 만들어낸 9관왕

유재민(18)군과 유건(17)군은 7남매 다자녀 가정에서 다섯째, 여섯째로 태어난 형제 레슬링 선수다.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시지만 최근 어깨가 성치 않아 일을 그만두게 되시면서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한 상황이다. 중요한 시합 때면 "이기지 않아도 되니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만 해달라"고 이야기 해주던 둘째 누나는 약 1년 전부터 희소성 난치병으로 병원에서 투병중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역도부에서'운동 종목과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온 재민 군이었지만 손영태 감독은 무게 중심이 낮고 전체적인 근육의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그의 신체적 조건을 보고 레슬링 선수로는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 우직한 성품이 장점으로 꼽혔던 재민 군은 강도높은 훈련을 견뎌내며 중학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국 주요 대회 금메달을 휩쓸었다. 2년 연속 주요 전국대회 6관왕을 차지한 쾌거였다.

올 해 고등학생이 되는 동생 건 군도 지난 중학교 선수 생활 동안 청소년대표선발전, 회장기, 문화체육관광부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3관왕을 거머쥐었다. 의지와 근성이 강한 건 군의 '엉치걸이' 기술에 넘어가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다.

이렇게 유씨 형제가 중학교 때 합작한 금메달만 9개가 넘는다. 이들은 차세대 형제 레슬러로 대한민국 레슬링계에서도 유망 인재로 주목받고 있다.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손 감독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명확한 목표 설정입니다. 선수들과 매번 상담하면서 단계별로 뚜렷한 목표의식을 심어주고 마지막에는 오로지 전국 소년체전의 금메달을 목표로 도전합니다."

취재진은 선수들에게 때로는 연습 도중 숨이 넘어갈 지경인데도 하루종일 이어지는 강도 높은 맹훈련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물었다.

선수들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슬럼프가 찾아올 때일수록 감독 선생님들과 가족들의 따뜻한 격려가 마음을 다시 잡는데 가장 큰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또 마치 짜기라도 한듯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입을 모았다.

'격려(激勵)', 만(萬)의 힘(力)을 가진 두 글자가 만들어낸 '레슬링' 계의 신(新)바람이었다.

손 감독은 그간 선수들을 훈련시키면서 느낀 점이 있냐는 질문에 "내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부산체육중·고등학교는 부산 레슬링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3년 연속 전국소년체육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침체된 부산 레슬링계의 재도약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는 셈이다.

권재창 감독교사는 "레슬링은 오로지 몸으로 부딪히는 원초적이면서도 순수한,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운동"이라며 "예전에는 올림픽 금메달 효자종목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이 계속된다면 촉망받는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지역사회의 레슬링에 대한 관심과 장기적인 지원 방안이 가장 필요한 때인것 같다"고 덧붙였다.

choah4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