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잔인한 이율배반 '근친교배'
[동물원 바로보기] 동물원은 정말 '노아의 방주'일까②
(서울=뉴스1) 라이프팀 = 동물들을 야생 환경의 멸종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동물원은 오히려 자신들이 사육하는 동물들의 '유전적 멸종'을 조장하고 있다.(▶동물원은 노아의 방주인가? 1편 참고) '종 보전 기관'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마당에 동물들을 방주에 보관하는 단순 역할마저 수행하지 못하는 셈이다. 계속되는 교잡은 보전생물학에서 말하는 분류학적 불확실성(Taxonomical uncertainty)을 높여 도리어 종 보전을 저해한다.
따라서 적어도 종 보전에 일조한다고 말하는 동물원이라면 교잡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것은 물론 이미 교잡된 경우 교잡 개체들의 번식을 막는 것으로 보유한 혈통의 유전적 관리에 힘써야 마땅하다. 온전하게 보관이라도 잘 해야 명함이라도 내밀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교잡 경향이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일반적인 탓에 동물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방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물원이 '노아의 방주'로서 부족한 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야생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근친교배가 방지된다. 예컨대 호랑이 수컷은 암컷보다 넓은 영역을 가지려는 습성이 있다. 이 때문에 독립 시기의 수컷은 암컷보다 어미 영역에서 멀리 이동한다. 자연스럽게 어미와 만나 번식할 확률이 낮아지는 셈이다. 또한 수호랑이는 자기 자식이라도 성 성숙이 끝난 아들을 다른 수컷처럼 적대시한다. 따라서 독립하는 수호랑이는 건재한 아비 때문에라도 어미와 암컷 형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터를 잡아야 한다.
이러한 생태적인 요인은 호랑이가 가까운 가계의 개체들과 번식하게 될 확률을 떨어뜨리면서 반대로는 먼 가계의 개체들과 만나 번식할 확률을 올려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 호랑이 개체군의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을 높여 '유전적으로 건강한' 개체군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폐쇄 환경인 동물원에서는 이러한 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인위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새끼 호랑이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면 어미와 분리해 사육하고, 기존 가계의 호랑이들을 연관이 없는 새로운 가계의 호랑이들과의 번식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동물원에서는 교잡보다 흔한 것이 바로 근친교배다.
동물원에서 반복되는 근친교배는 유전적 다양성을 낮추고 열성유해대립유전자의 발현빈도를 높여 세대를 거듭할수록 후손들에게 신체·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근교약세 현상을 초래했다.
근친교배로 인해 낮은 질병 저항성과 선천적 기형, 약물에 대한 비정상적 반응을 보이거나 번식능력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점을 갖고 태어난 개체들은 장애와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으면 평생 어딘가 불편한 삶을 살고, 동물원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려 열악한 환경에서 살거나 수준 이하의 시설로 팔려가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전술한 교잡 문제와 더불어 생각해보면, 현대의 동물원은 동물 종을 온전히 보관하는 그 한가지의 일을 해내는 것조차 근본적으로 어려운 곳이라는 평가를 무리 없이 내릴 수 있다.
근친교배는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동물원의 수익에도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동물원이 이 같은 현실을 이어가는 데는 근친교배를 방지하는 일이 당장의 수익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근친을 방지하기 위해선 혈연관계의 번식 가능한 동물들을 분리해 사육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우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시시설인 동물원의 입장에서는 한 개 종의 우리를 여러 개 지을 비용과 면적이면 차라리 다른 종 하나 더 전시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다른 가계의 개체를 들여온다는 것 또한 결국 다른 동물원의 동물을 들여온다는 의미가 되는지라 수익과 무관한 인력사용과 시간,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상술한 현실적 어려움은 동물원이 종 보전에 신경 쓰지 않는 순간 모두 사라진다. 근친을 고려하지 않으면 분리를 위한 별도의 시설도, 다른 동물원에서 새로운 개체를 사거나 교환할 필요도 없어진다. 상업시설의 측면에서만 봤을 때, 종 보전은 확실히 '돈만 드는 일'이다. 그래서 상업적 동물원에게는 반대로 종 보전과 무관한 운영을 하는 것이 '돈 만드는 일'처럼 여겨지기 쉽다.
'동물원은 노아의 방주인가' 3편은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최혁준(공주대 특수동물학과 2년,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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