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할 수 없는 치타, 비행할 수 없는 독수리

[동물원 바로보기] 네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②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치타. (사진 최혁준) ⓒ News1

(서울=뉴스1) 라이프팀 = 야생의 동물들은 각자 서식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감각을 사용하고 몸을 움직이는 등 인지능력을 동원한다.

좋은 예로, 치타는 야생에서 무려 100㎞/h 내외의 속도로 내달리며 적당한 크기와 종류의 사냥감을 선별하고, 자신이 지치기 전까지 앞발이 닿을 수 있을 정도까지 사냥감과의 거리를 좁힌 뒤, 최적의 순간 사냥감에 다리를 걸어 죽기 살기로 몸부림치는 먹잇감을 제압해야지만 비로소 먹이를 얻을 수 있다. 그마저도 나열한 과정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모두 맞아떨어진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그렇다. 기상 조건이나 시간대, 지형을 고려하는 것도 사냥의 성패를 좌우한다.

에버랜드 동물원의 치타 한 쌍. (사진 최혁준) ⓒ News1

반면 동물원의 치타는 뛰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한 양의 먹이를 얻는다. 동물원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종류, 정해진 양만큼의 먹이를 정해진 방법으로 공급받는다. 사람은 동물의 감정을 완벽하게 알 수 없기에 과연 야생의 치타가 동물원 치타의 팔자를 부러워할지, 또는 동물원에서 태어난 치타가 야생의 치타를 동경할지는 영원히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육식동물인 치타의 삶에서 사냥이 빠져나가 생긴 공백은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몸은 흔드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아시아코끼리. (사진 최혁준) ⓒ News1

사실 치타만이 아닌 수많은 동물원 동물들이 야생에서 보이는 여러 행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이러한 '공백'을 가진다. 돌고래의 삶에서 장거리 유영이 빠지고, 독수리의 삶에서 비행이 빠지고, 코끼리의 삶에서 사회생활이 빠지는 식이다. 그렇게 발생한 공백은 무의미하고 단순한 행동들로 채워지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난주에 살펴본 '정형행동'이다.

이렇듯 동물원 동물들이 야생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자극을 받지 못해 정상적인 행동들을 보이지 못함과 더불어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지속적이고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그러한 단순화된 행동양상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때, 그 인위적인 자극이 바로 동물행동풍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사육장을 왔다 갔다 움직이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삵. (사진 최혁준) ⓒ News1

행동풍부화라는 단어 자체는 영어 단어를 직역해 사용하고 있어 어감은 조금 어색하지만, 사육중인 동물의 행동을 기존에 비해 더욱 '풍부(다양)하게' 하겠다는 그 의미는 명료하게 다가온다.

동물행동풍부화가 목표하는 바는 야생에서의 정상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거나 극대화시켜 대상 동물의 행동적 다양성을 높임으로서 상술한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또한 자극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백 시간에 나타나는 정형행동과 같은 이상행동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까지를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치타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면, 동물원 치타가 사냥을 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주요 문제점은 야생과 비교해 먹이를 얻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 부차적으로는 사냥을 통해 발생하는 운동량을 얻을 수 없다는 점, 사냥을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지적 자극이 없다는 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게다가 '공백'으로 인해 남는 시간 동안 치타와 같은 고양잇과 동물들은 주로 사육장을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풍부화 적용이 절실하다.

사육사가 던져 준 생닭을 먹는 시베리아호랑이. (사진 최혁준) ⓒ News1

단순하게 먹이를 급여하는 경우, 사육사로부터 받아든 고기를 다 먹고 나면 치타는 빠르게 다시 할 일 없는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치타에게 산 먹이를 던져주어 직접 사냥(야생과 비교해 조건이 여러모로 치타에게 유리하여 진정한 사냥이라고도 볼 수 없다)해 먹게끔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경우 '먹이를 얻는 시간'이라는 본질적 문제점에 집중하면 해답이 보인다.

얼음 속의 과일을 먹는 북극곰. 먹이를 먹는 시간도 늘어나고 한여름에는 체온도 낮출 수 있다. (사진 최혁준) ⓒ News1

먹이를 쉽게 얻지 못하도록 먹이를 방사장 곳곳에 숨기는 것, 공중에 매달거나 바닥에 고정하는 것, 박스에 넣거나 얼음 속에 넣어 얼리는 것, 살코기가 붙은 뼈째로 주는 것 등의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먹이를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릴 수 된다. 또한 먹이를 얻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적 자극을 받고, 몸을 움직이면서 운동량을 늘릴 수 있다. 이렇게 행동풍부화는 치타가 무료하게 보낼 시간을 감소시켜 정형행동을 줄이고, 먹이를 그냥 급여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각종 행동을 유도하여 행동의 다양성을 높인다.

먹이는 모든 동물 행동에 강한 동기를 부여해 동물원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풍부화 형태 중 하나다. 풍부화에 먹이를 이용하게 되면 동물들이 풍부화를 통해 처음 겪는 낮선 자극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전하게끔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성공적인 반응을 기대하기 쉽다.

'네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 3편은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최혁준(공주대 특수동물학과 2년,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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