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디지털 시대에 던지는 느림의 미학"…황재원 '느리게 연결 중' 展
사비나미술관 10월 11일까지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온통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고 결과만 재촉하는 현대 사회에서 일부러 손을 놀려 시간을 늦추는 독특한 전시가 문을 연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젊은 예술가를 돕는 지원 사업으로 기획한 황재원의 개인전 '느리게 연결 중(Slowly Connecting): 익숙한 사물의 낯선 변신'을 10월 11일까지 선보인다. 기계가 뚝딱 물건을 찍어내는 시대에 작가는 바늘과 실을 쥐고 한 땀씩 엮어가는 직조 방식을 고집했다.
전시의 중심에는 차가운 가전제품의 변신이 자리한다. 털실 날개를 달아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는 선풍기 '시원하니?', 부드러운 천에 싸인 옛날 브라운관 TV '애국가도 끝난 시간', 실로 엮은 병풍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등이 대표적이다. 작동을 멈춘 기계는 쓰임새를 잃은 대신 따스하고 시적인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작가는 실이라는 재료를 단순한 만들깃감이 아니라 손길이 머문 시간을 새기는 도구이자 옛 추억과 지금을 묶어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지극히 느린 손노동을 통해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타인과 기억을 나누려 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흘러내리는 시계나 클래스 올덴버그의 푹신한 조각처럼 주변 사물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시도다.
전시가 열리는 사비나플러스 공간은 관람객을 과거의 어느 한순간으로 데려간다. 멈춰 선 선풍기 앞에서 옛 여름날의 가족을 떠올리고, 털실 TV 앞에서 늦은 밤의 거실을 회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즉각 연결되는 인터넷 세상이지만 정작 사람 사이의 교감은 얕아졌다. 손끝으로 천천히 쌓아 올린 작가의 시간은 잊고 지낸 일상의 소중함을 되찾아주며 디지털에 지친 이들에게 깊은 쉼표를 건넨다.
acene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