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이전 vs 서울 사수... 23년째 반복되는 한예종 '유랑'의 흑역사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양대축이었으나 학교 반대로 '무산'
이전 논란의 원인은 "자체 교사부지의 부재"…선거철마다 지역 유치의 대상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광주로 옮기려는 논의는 23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처음 본격화했다. 당시 지방이전 대상 기관에 포함됐다가 이강숙 초대 총장을 비롯해 교직원의 적극적 방어로 서울에 남았지만, 독자적인 교육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이전 논란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됐다.
노무현 정부는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2003년 4월 대통령 자문기구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발위)를 출범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해 6월 수도권 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방침을 공식화했고, 2005년 6월 이전대상 125개 기관을 최종 발표했다.
당시 한예종 교직원과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하면 한예종은 이전기관에 포함됐으나 적극적 방어를 통해 서울에 머물 수 있었다.
한예종은 균발위 산하 공공기관지방이전특별위원회가 2004년 6월 잠정분류한 수도권 소재 268개 기관 중 지방이전 대상기관은 190개에 포함됐으며 이전 지역으로 광주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한예종의 광주 이전은 건국 이래 국가가 주도하는 최대 규모의 문화프로젝트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골자이기도 했다. 이 사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건설하고 한예종을 이전해 광주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결국 한예종이 빠진 것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현재까지 콘텐츠 부족과 정체성 논란을 겪는 근본원인이다.
한예종의 방어논리는 현재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주로 이전하면 우수한 교직원과 학생을 유치할 수 없으며 문화인프라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 이에 정부가 제시한 반대 급부도 석·박사 학위를 인정하겠다는 정준호 의원의 법안과 거의 유사했다. 여기에 옛 전남도청의 자리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지를 한예종의 이전 위치로 제시하기도 했다.
한예종의 석관동 교사는 땅주인이 국가유산청이다. 1991년 개교 당시에 한예종은 교사가 없어서 남산 국립극장의 일부 건물을 빌려 썼다. 이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석관동에서 세곡동으로 이전하자 철거를 조건으로 ㅁ자 형태의 본부 건물로 임시이전했다. 지금은 철거된 이 부지가 의릉의 핵심 구역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의릉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등재되자 중앙정보부 본부건물이 철거되면서 현재의 석관동 교사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기숙사인 천장관, 미술원과 전통예술원 사용하는 교사가 문화유산의 복원을 위해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유산청은 아직도 매년초 한예종에게 의릉 복원을 위해 이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있다.
광주가 아닌 서울을 고수하겠다는 한예종 구성원의 대외적 입장은 교내 문제로 접근하면 더 복잡해진다. 당초 석관동 캠퍼스를 6개원이 모인 통합 캠퍼스로 설계하려고 했으나, 음악원과 무용원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문화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초동 예술의전당을 벗어나 문화의 불모지인 성북구 석관동으로 가면 교육환경을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후 한예종 이전 후보지로는 서울에서는 송파, 노원, 종로가, 경기권에서는 고양, 과천, 하남, 파주, 인천이 거론됐다. 서울권은 한예종이 주도한 움직임이었고, 경기권은 정치권과 지방정부가 이전 논의를 이끌었다. 다만, 한예종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 자산이라는 점에서 서울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습권 보호를 넘어선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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