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응축된 상실과 치유의 기록"…이나윤 '돈트 스피크'전

갤러리 민트 13~31일

신작 전시 '돈트 스피크'(Don't Speak)를 선보이는 그레이스 나윤 리(이나윤) 작가. ⓒ 뉴스1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관계의 단절 뒤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과 영상 작업을 기반으로 매체의 경계를 확장해 온 그레이스 나윤 리(이나윤) 작가가 신작 전시 '돈트 스피크'(Don't Speak)를 통해 상실 이후의 감정과 자아 회복의 과정을 선보인다.

작가는 평소 천착해 온 인간관계의 역동성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영상과 회화 및 도자라는 서로 다른 층위의 매체로 풀어냈다.

이나윤은 "전시명 'Don't Speak'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나'와, 상대방에게 더 이상의 말을 거부하는 '타자'의 목소리가 공존한다"고 밝혔다.

그레이스 나윤 리(이나윤) 작가가 신작 전시 '돈트 스피크'(Don't Speak) 전시 전경. ⓒ 뉴스1 김정한 기자

그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마주했을 때 선택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영상 작업에서는 "캔 유 포기브 이프 유 캔트 포겟?"(Can you forgive if you can't forget? 잊지 못하면 용서할 수 있는가)와 같은 텍스트가 끊임없이 순환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는 머릿속을 맴도는 복잡한 생각과 불확실한 감정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도자 인형들은 작가 자신을 투영한 '토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귀가 길게 늘어지거나 몸을 웅크린 이 존재들은 상실 이후 응축된 슬픔과 외로움을 상징한다. 정적인 도자는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의 덩어리를, 움직이는 영상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내면의 사유를 대변하며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레이스 나윤 리(이나윤) 작가 개인전 '돈트 스피크'(Don't Speak) 포스터 (작가 제공)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히 슬픔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는 존재의 상실을 치유하는 데 집중한다. 심리학적 기법에서 착안한 카운트다운 오디오 작업은 관객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현재의 현실로 이끄는 장치다. 여러 마리의 토끼가 모여 있는 모습은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보듬는 커뮤니티적 치유를 의미한다.

이나윤은 "특정한 사건에 매몰되기보다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의 정체성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 찾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은 루프(Loop)처럼 반복되는 감정의 굴레 속에서 각자의 경험을 대입하게 된다. 이를 통해 침묵 너머에 있는 진정한 대답을 고민하게 된다. 전시는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에 위치한 갤러리 민트에서 13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