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경험"…3000석 바라보며 시·음악에 몰입한 특별한 100分

세종 인스피레이션 '리딩&리스닝 스테이지' 리뷰

'리딩&리스닝 스테이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객들이 텅 빈 3000여 객석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는 '음악이 흐르는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무대 중앙에는 시집 27권이 세 개의 서가에 나뉘어 비치돼 있었고, 그 뒤편에는 3단 의자가 디귿(ㄷ) 형태로 마련돼 있었다. 프로그램 시작을 앞두고 관객 몇몇은 텅 빈 3000여 석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단 이틀간 대극장 무대가 객석으로 바뀌는 특별한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세종문화회관이 새로운 극장 경험을 선사하는 '세종 인스피레이션'의 올해 첫 프로그램 '리딩&리스닝 스테이지'가 25~26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열렸다. 라이브 공연 형식에서 벗어나, 엄선된 시집과 음악을 대극장 무대 위에서 감상하는 색다른 시도다. 지난 6일 티켓 오픈 후 1시간 만에 전 회차가 매진되면서 관객 요청에 따라 회차는 4회에서 5회로, 좌석 수는 회당 50석에서 80석으로 확대됐다.

이날 무대에 놓인 시집들은 세종문화회관이 올해 선보이는 27편의 공연과 맞닿아 있었다. 공연과 정서적 울림이 닮은 시집을 짝지어 둔 것. 예컨대 3월 선보이는 서울시합창단의 '언제라도, 봄'은 정끝별의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와 연결됐고, 9월 공연되는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허은실 시집 '회복기'와 짝을 이뤘다.

시집을 들고 있는 관객 모습(세종문화회관 제공)
"발레와 시, 쏙 닮았죠"

'리딩&리스닝 스테이지'는 '리스닝'과 '리딩' 두 축으로 구성돼 진행됐다. 리스닝 부분도 27개 공연과 연계한 음악을 선곡해 네 가지 테마로 들려줬다. '응시와 호흡', '상실과 대면', '위로의 온기', '부활과 환희'라는 주제 아래 총 7곡이 대극장 전체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저마다 고른 시집을 펼쳐 읽거나 눈을 감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시집 속 구절을 공책에 옮겨 적는 관객 모습도 눈에 띄었다.

40분간 이어진 '읽기와 듣기' 시간이 끝난 뒤에는 아티스트와의 대화가 마련됐다. 초대 손님은 박연준 시인과 서울시발레단 남윤승·최목린 무용수였다. 박연준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에 실린 '불사조'와 발레 공연 '블리스&재키'(3월 14~21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강렬한 사랑 에너지였다.

박연준은 "'불사조'는 첫사랑에 대해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시"라며 "첫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죽지 않고 계속 떠오른다(웃음)"며 "시집 전체에서 사랑의 파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발레는 시와 닮은 점이 정말 많다"며 "아름다움에 복무하기 위해 끊임없이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두 예술은 닮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60대 관객 정모 씨(서울 강남구)는 "평소에는 시를 거의 읽지 않는데, 이곳에서 문태준의 '풀의 탄생'을 읽으며 제주도의 사계절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시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60대 관객 김모 씨(서울 양천구)는 "관객이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는데, 100분간 특별한 경험을 했다"며 "'블리스&재키' 공연 장면이 일부라도 포함돼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세종문화회관은 올해 '인스피레이션' 시리즈로 슈베르트의 음악을 따라 극장 곳곳을 이동하며 감상하는 '워크 어바웃 콘서트', 무대 위에 누워 발레 음악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리스닝 스테이지'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왼쪽부터) 이단비 드라마투르그, 박연준 시인, 최목린, 남윤승 무용수(세종문화회관 제공)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