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넘어 도약으로…'질적 성장'이 답이다 [K뮤지컬 이러면 해피엔딩]②

"인프라 확충·제도 개선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 나서야"

편집자주 ...K-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이다. 국내에선 K-팝, K-드라마계의 스타들까지도 K-뮤지컬 무대로 대거 몰리고 있다. 해외에선 한국 토종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 등 무려 6개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국내외 모두에서 주목 받고 있는 K-뮤지컬이지만, 스태프의 처우 등 개선할 점 역시 여전히 많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뉴스1은 총 3편의 [K뮤지컬 이러면 해피엔딩] 시리즈를 통해 '영광'과 '과제'가 공존하는 K-뮤지컬계를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남녀 주연 배우 헬렌 제이 셴(Helen J Shen)과 대런 크리스(Darren Criss)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K-뮤지컬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에서 6관왕을 차지하며 그 위상을 드높였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공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도 많다. 단기적인 성과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구조 개혁과 인프라 확충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K-뮤지컬이 한국을 넘어 세계 문화의 한 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다음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평가다.

지나친 스타 의존성과 불안정한 임금 시스템

고희경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교수는 한국 뮤지컬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는 지나친 스타 의존성을 지적한다.

고 교수는 "스타 캐스팅은 대중성 확보와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제작비의 많은 비중이 스타급 배우들을 섭외하는 데 집중되다 보니 나머지 출연 배우나 스태프 등에 대한 처우는 상대적으로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높은 스타 캐스팅 비용은 나머지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부당 처우로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예술인들의 17.9%는 임금체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뮤지컬계 한 관계자는 "프리랜서 출연자들이 극단에서 무보수로 수개월에서, 수년간 일했다는 경험담은 공공연한 얘기"라며 "이들은 극단 관계자나 연출가들에게 행여 밉보일까 봐 밀린 임금을 달라고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출연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작품' 그 자체에는 관심이 덜한 우리나라의 관람 문화도 아쉽다"며 "이러한 분위기가 제작사들의 스타 캐스팅 욕구를 부추겨 높은 제작비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높은 티켓 가격으로 귀결돼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도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창작뮤지컬 '명성황후' /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시장 규모는 세계 4위, 질적 수준은 미지수

한국은 미국, 영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뮤지컬 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양적 성장만큼 질적 성장이 동반됐는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2025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뮤지컬 시장 공연 건수는 1587건(전체 공연 중 16.1%), 공연 회차는 2만 1378회(34.8%), 티켓예매 수는 약 400만 매(37.4%), 티켓 판매액은 약 2376억 원(32%)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통계치 결과에 대해 뮤지컬 전문가들은 "뮤지컬 장르의 공연시장은 양적으로 성장했으나, 공연의 질적 성장이 동반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결론을 내렸다. 공급(공연 건수·공연 회차) 증가율에 비해 수요(티켓예매 수·티켓 판매액) 증가율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연 회차 1회당 티켓예매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실제로 2022년 222매, 2023년 213매, 2024년 198매, 2025년 187매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소극장의 공연 회차가 증가했거나 공연 출연진 중 인기배우의 특정 회차에 판매 쏠림으로 회당 티켓예매는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뮤지컬 공연의 서울 편중도 심하다. 전체 뮤지컬 시장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티켓예매 수와 티켓 판매액은 각각 약 280만 매(70%), 1897억 원(79.8%)으로 나타나 뮤지컬 수요의 70% 이상이 서울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기 공연 반복의 악순환 개선해야

뮤지컬 공연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뮤지컬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뮤지컬 시장은 '단기 공연의 반복'이라는 악순환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 공연 기간이 짧다 보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기간은 2개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라이선스 뮤지컬 '팬텀'의 공연 기간은 2.5개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라이선스 뮤지컬 시라노의 공연 기간은 2.5개월 정도였다. 뮤지컬 전용 극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공연이 이처럼 단기 공연에 치중하는 가장 큰 요인은 턱없이 부족한 뮤지컬 전용 극장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뮤지컬 공연은 대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제작사는 짧은 시간 내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하므로, 재정적 리스크를 줄이려 공연 기간을 짧게 잡는 경향이 강하다. 한 작품을 6개월 이상 장기간 공연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다.

지난 10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한 '케이-뮤지컬 진흥을 위한 간담회'에서도 단기 공연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 자리에서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 출연 중인 김수하 배우는 "창작 뮤지컬의 경우 한두 번 공연 후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며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만 제2의 토니상 수상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홍익대학교아트센터 대극장을 방문해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관람한 뒤 출연진과 관계자를 만난 모습 / 뉴스1
보다 적극적인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 수상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창작 지원으로 개발되고, 로컬에서 글로벌로 진화하는 시스템을 갖춘 한국의 뮤지컬의 생태계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K-뮤지컬이 세계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공을 이루려면 보다 더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언어,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현지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맞춤형 작품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한국적 감성을 보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어 해외 관객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며 "문화란 이렇게 현지 환경과 서로 만나고 섞여야 대중성과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뮤지컬 전문가들은 해외 유수의 제작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 초기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작품이 더욱 많이 기획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지 관객의 정서와 문화에 부합하는 소재와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로컬라이제이션하는 전문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고 교수는 "한국 뮤지컬 시장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는 작품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우수한 창작 인력이 계속 뮤지컬에 뛰어들고 있으므로,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할 인프라 개선은 물론, 우수한 작품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키워주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따라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