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조각가, 오늘도 '전기톱'을 든다…"합이합일 분이분일"
1세대 조각가 김윤신,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서 개인전…5월7일까지
프랑스,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돌아 조국으로…정통 조각의 힘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한 조각가가 오늘도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고, 정과 망치로 마무리 작업을 한다. 나무 조각에 색을 입히지 않던 조각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색을 입히는데 더욱 정(情)을 붙이기 시작했다.
"제가 막내라 어릴 적 혼자일 때가 많았는데, 그때 혼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밤에는 별들이 친구가 되어주었지요. 그때 별을 보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반짝반짝해?'라고 묻곤 했는데, 코로나 시기 혼자 보낼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올해 88세 김윤신 작가의 말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에서 28일부터 5월7일까지 김윤신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열린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을 조명하는 첫 국공립 미술관 개인전이다.
김윤신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5년 태어나 1955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5년간 공부하고 귀국해 10여년을 한국에서 보낸 후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2022년 개인전 등의 사유로 '잠시' 귀국했지만, 전시가 잇따라 잡히면서 돌아갈 비행기표는 끊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김윤신은 지난 27일 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은 생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짧지 않은 인생만큼 그가 겪은 경험은 다양하다. 조국의 해방과 한국전쟁, 모두가 어려운 시기의 프랑스 유학과 아르헨티나 이주, 그 중간중간 멕시코와 브라질에서의 삶, 1세대 여성 조각가로서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설립까지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숱한 경험 끝에 다다른 결론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즉 음과 양이 온전히 합해져야 하나가 되고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 그 분할은 또 다른 완전한 존재의 '하나'가 된다는 깨달음이다.
김윤신은 생애 전반에 걸쳐 나무조각 위주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조각뿐만 아니라 김윤신이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탐구했던 석조각을 만날 수 있단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김윤신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멕시코 테칼리(Tecali) 마을에서 오닉스(Onyx) 조각을,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브라질의 솔레다데(Soledade)에 머물며 준보석을 재료로 석조각을 탐구했다.
특히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단단함을 지닌 오닉스는 김윤신에게 그 자체로 우주가 지나온 시간이 층층이 쌓여있는 지구의 축약본으로 다가왔다. 거친 돌의 표면과 인위적으로 재단한 안쪽의 매끄러운 면의 대비를 통해 김윤신은 우주적 힘의 질서를 표현하고자 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는 하늘에 닿고자 하는 염원과 종교적 영원성을 추구하는 마음을 날개 형상과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T자 형태의 목조각으로 표현했다. 김윤신에게 나무는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는 존재이다. 이 시기 작품들은 얼핏 솟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한옥 처마의 곡선이나 한복 소매의 배래선이 갖는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확장한다.
이번 전시의 몇 안 되는 회화 작품 중 하나이자 유일한 대형 회화작인 2013년작 '내 영혼의 노래'는 아르헨티나의 대지와 자연이 지닌 생명력을 그렸다.
이번 전시는 나무와 돌 등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며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최대한 드러냄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희미해진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근원적 감각을 일깨운다.
김윤신은 보다 가벼운 재료나 쉬운 방식의 조각 방법을 고려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돌이나 나무가 무겁다고 가벼운 재료로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3D 스캐너 활동도 마찬가지다"라며 "이제 나의 나라에서 최대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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