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작가·낡은 장총이 쏜 역사에 대한 경종…극작가 김은성 [조재현의 조명]

연극 '빵야'…역사 소비하는 방식 되물어
6월 '베니스의 상인들'로 창극 도전…"창극은 정말 깊은 세계"

편집자주 ...조명(照明). '광선으로 밝게 비추거나 무대의 예술적인 효과를 위해 빛을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또 '어떤 대상을 일정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뜻도 있습니다. '다양한 빛' 아래 살아가고 있는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볼까 합니다. 묵묵히 제 몫을 하는 문화·예술인들 모두 조명받을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뉴스1과 인터뷰 중인 연극 '빵야'의 극작가 김은성.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일본제국주의의 마지막 주력 화기였던 '아리사카 99식' 장총과 한물간 드라마 작가가 만났다.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작가가 애원하듯 장총을 조른다. "날 한 번만 믿고 이야기 좀 해달라." 애처로운 매달림에 장총도 입을 뗀다.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작가가 약속하자 무대 위 장총의 생애가 펼쳐진다. 국내 연극계가 주목하는 극작가 김은성(46)의 신작으로, 지난 26일 LG아트센터 서울서 막을 내린 연극 '빵야'다.

김은성은 '빵야'를 통해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만난 김은성은 "작품을 쓸 때 한국 현대사를 식상하지 않게 그리고 알릴 부분은 제대로 알리자고 스스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간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과는 다른 이야기를 뽑아내는 데 주력했다.

김은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장총을 의인화해 등장시킨다. 장총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내리막길을 걷는 40대 드라마 작가 '나나'는 소품 창고에서 발견한 이 장총에 '빵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장총을 소재로 대본 작업에 돌입한다.

1945년 인천 조병창 제3공장에서 만들어진 빵야의 첫 주인은 독립군 토벌에 나선 일본관동군의 조선인 출신 장교 기무라였다. 기무라는 빵야로 수많은 조선인을 죽인다. 이후 조선인 병사 길남, 중국팔로군 선녀의 손으로 넘어간 빵야는 제주 4·3사건이 벌어지던 해 국방경비대 병사 무근, 서북청년단원 신출에게도 전해진다.

한국전쟁 중에는 한국군 학도병 원교와 북한군 의용대 아미에게 흘러간다. 빨치산 토벌부대인 보아라부대 병사 동식과 빨치산 소녀 설화도 빵야의 주인이었다. 이후 빵야는 심마니, 사냥꾼, 포경꾼, 건설업자, 영화 제작자 등을 거쳐 소품 창고에 이른다.

연극 '빵야' 공연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김은성은 7~8년 전 사물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스 시대 제작된 동상이 전쟁 때는 칼이 됐다가 대항해시대 범선의 일부가 되고, 이후 동전이 되는 일종의 '철의 연대기'였다. 하지만 방대한 세계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고, 이야기는 거기서 멈췄다.

그런데 일제가 남기고 간 총으로 남과 북이 싸웠다는 이야기가 김은성을 움직이게 했다.

"2018년 미국 뉴욕에 잠시 머물 때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숙소 근처라 자주 갔어요. 어느 날 무기관에서 미국 남북전쟁 때 사용된 장총을 보는데 주인이 계속 바뀌는 내용을 얘기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얘기할만한 총 한 자루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자료조사를 하던 중에 99식 장총을 만나게 됐죠."

그렇게 김은성은 3년간 '빵야'에 몰두했다. 작품은 나나가 빵야를 소재로 쓴 드라마의 편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빵야를 소유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중첩해 보여준다. 빵야의 주인이 10여 차례 바뀌는 과정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적인 현장에서 피를 뒤집어쓴 빵야 못지않게 전월세살이를 청산하려 발버둥 치는 나나의 모습은 애잔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드라마 제작은 난관에 부딪힌다. 소위 '시청률 대박'을 위한 스타 캐스팅, 러브라인 구축 등 타협해야 할 조건들이 쌓여만 간다. 나나는 빵야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겠노라 약속한 상황. 나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다'는 작가 의식 사이에서 갈등한다. 작품 속 나나의 고민은 우리가 역사를 다루는 시선이나 방식을 되묻는다.

연극 '빵야' 공연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드라마 편성엔 실패했지만, 나나는 다른 곳으로부터 판권 계약 제안을 받는다. 원하고 원하던 '생계와의 전쟁'에서 벗어날 기회다. 하지만 나나는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다. 김은성은 이에 대해 "그렇게 팔아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권이 넘어가면 상업자본의 힘을 얻고 빵야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가 없어요. 나나는 그런 식으로 역사가 소비되는 것을 막은 것이죠."

김은성은 다소 진중하게 다가올 수 있는 빵야의 이야기에 나나의 서사를 더해 맛깔나는 동시대성을 선사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울다가 웃기를 반복한다. 나나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살다보면 누구나 실패할 때가 있죠. 그런데 그 이후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실패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지' '실패에서 뭘 얻어야 하지' 이런 생각들 말이죠. '빵야'를 보면서도 관객들이 그런 용기를 얻어갔으면 하는 게 제일 컸어요."

연극은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 장르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시대의 관객이 함께하는 예술이라서다. 김은성 역시 "작가는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뉴스1과 인터뷰 중인 연극 '빵야'의 극작가 김은성.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를 졸업한 김은성은 서양 고전 희곡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데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달나라 연속극'(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 '순우삼촌'(안톤 체호프의 '바냐아저씨'), '뻘'(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로풍찬 유랑극장'(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함익'(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 여러 편의 재창작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는 재착장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훈련을 하기엔 고전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미 훌륭한 스토리가 있어 기댈 버팀목도 있는 셈이죠." 고전 작품을 본 뒤 '나라면 이랬을 텐데' 하는 잔상이 사라지지 않을 때면 도전하고픈 욕구가 샘솟는다고 했다.

창작에서도 그의 역량은 빛난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북으로 돌아가려는 탈북 여성의 좌절을 그린 '목란언니'로 2012년 제4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비극적인 사건에 노출된 아이들의 희생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깊은 슬픔에 대해 얘기한 '썬샤인의 전사들'로 2016년 제10회 차범석 희곡상을 받았다.

그런 김은성이 극본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인물에게 목표를 주는 것'이다. '빵야'에서도 그랬다. 빵야는 사람의 몸을 해치는 무기로 만들어졌지만,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악기가 되고픈 꿈이 있다. 이런 생각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구경하다 나온 것이다. "박물관에 가면 '무기관'과 '악기관'이 붙어 있거든요. 전시된 장총들을 보면서 '총과 악기 이야기를 같이 해봐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뉴스1과 인터뷰 중인 연극 '빵야'의 극작가 김은성.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김은성은 팬데믹을 계기로 무대의 소중함도 뼈저리게 체감했다. 이렇게 힘들게 작품을 올린 적이 없어서다. 2020년 완성된 '빵야'는 3년 만에 관객과 만났다. 공연기획사 엠비제트컴퍼니 측이 제작에 나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2006년 신춘문예 당선작 '시동라사'로 데뷔한 후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기에 무대화 과정을 식상하게 느낄 때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팬데믹을 겪으며 '운이 좋은 작가였구나' '데뷔와 함께 기회를 많이 얻은 작가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김은성은 오는 6월 국립창극단의 '베니스의 상인들'로 창극에 처음 도전한다. 사실 지난해에도 '작창(作唱)가 프로젝트'란 기회가 있었다. 멘토링을 통해 창극 대본을 써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참여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오페라 대본을 써봤기에 음악극도 자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작품 맡겨주실 때 연락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창극을 완전 몰라봤어요. 건방지고 겁이 없었던 거죠.(웃음) 내공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면 프로젝트에 참여해 공부도 열심히 했을 겁니다. '베니스의 상인들' 작업에 참여하며 창극에 정말 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음고생 많이 하며 털었습니다.(웃음)"

서울시뮤지컬단과도 호흡을 맞춰 뮤지컬 '맥베스' 대본 작업에도 들어간다. 이 같은 도전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지금 상황을 축구로 따져보면 '후반전에 갓 돌입한 상황'이라고 그는 말했다. 게다가 0-2로 뒤지고 있단다. 목표는 짜릿한 3-2 역전승이기에 재능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했다.

"저는 늙어서도 극본을 잘 쓰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돼도 대학로에 공연을 올리고 싶거든요. 그게 목표이자 꿈이에요. 젊은 친구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패를 많이 쥐고 있어야죠."

묵묵히 걸어온 만큼 남은 시간.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을까. "돈이나 지위로는 채울 수 없는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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