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로 출발 '윤회'의 굴레서 벗어나기까지…'무라카미 좀비'展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고급미술과 대중미술 경계 허문 '슈퍼플랫'…3월12일까지 무료 관람
- 김일창 기자
(부산=뉴스1) 김일창 기자 = 작품을 보자마자 '이게 예술이라고?' 묻는다면 적절한 질문을 한 것이다. 답은 '이것도 예술, 전세계가 주목하는 미술'이다. 그것도 새로운 미술사조를 만들어낸 작가의 작품 앞에 당신이 서 있는 것이다.
일본 팝아트를 대표하는 무라카미 다카시(61)의 작품들이 부산에 왔다. 1992년 첫 전시 후 30년만, 2013년 두 번째 전시(플라토) 후 다시 10년만에 한국 방문이다. 한국 단색화의 대가 이우환의 초청('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작가)에 무라카미가 응하면서다. 장소는 부산시립미술관이다.
'이게 예술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면 무라카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무라카미 역시 10대 시절 '은하철도 999'와 '미래소년 코난'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에 깊은 감명을 받고 '미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무라카미는 지난 26일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미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2년이나 재수를 했다. 그러니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겠나. 그런데 현대미술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 하는 것은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컨셉이 있는가가 중요하지 얼마나 능숙하게 잘 그리냐는 두 번째 문제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부터 박사과정까지 정통 '일본화'를 전공한 무라카미는 '나만의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평면성'에 주목했다. 일본 전통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평면성'은 '평평함'과 같은 뜻으로, 이는 무라카미가 젊은 시절 꽃피운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평면성' '평평함'은 일본 사회에도 투영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일본 사회는 계층이 사라지면서 고급문화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춘다. 대중문화를 누구나 즐기는 상황이 온 것인데, 이 또한 '평평하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사회와 문화가 '평평해졌다'는 인식을 가진 무라카미는 새로운 미술사조 '슈퍼플랫'(Superflat)을 고안해 낸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캐릭터를 작품으로 만들면서 상위 미술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를 티셔츠나 장난감 등으로 상품화해 많은 사람이 미술을 공유토록 했다. 즉, 일본의 '오타쿠'(특정 대중문화에 몰두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 문화를 기반으로 상위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선구자적 역할은 한 이가 바로 무라카미인 셈이다.
전시는 △귀여움(Cuteness) △기괴함(Grotesque) △덧없음(Pathos) △원상(Enso) 네 구역으로 나뉜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의미없는 단어의 조합에서 '도브'가 탄생하고 '탄탄보'로 진화하고,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오마주, 동일본대지진 후 윤회, 생과 사, 시작과 종말 등 윤회에 허덕이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마지막에 윤회의 굴레에서마저 벗어나는 아미타까지, 이번 전시는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해 인간의 회로애락을 거쳐서 윤회에 대한 답을 찾다가 결국 윤회의 굴레를 뛰어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고 전시를 소개했다.
첫 섹션인 '귀여움'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은 무라카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도브'(DOB) 시리즈다. 무라카미는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처럼 의미 없는 단어의 조합에서 출발해 도라에몽과 슈퍼소닉의 이미지를 결합해 이 캐릭터를 창조한다. '도브'는 무라카미의 시그니처이자 로고, 분신처럼 작동한다.
이어 만나는 '탄탄보' 시리즈는 도브의 변형을 꾀해 나가면서 만들어낸 캐릭터 '탄탄보'가 주인공이다. 무라카미는 1960년대말 인기를 끈 만화 '게게로의 기타로'에 나오는 요괴들에서 영감을 받아 캐릭터를 발전시켰다. 화려한 색감으로 먼발치서 보면 '카와이'한 캐릭터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괴한 모습을 드러낸다.
'스파클 / 탄탄보: 영원'이란 작품에서는 화면을 주도하는 상반된 두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화면의 전면에는 기괴한 상태로 괴물처럼 변해버린 탄탄보가 드러내는 혼돈과 혼란스러움, 불안감이 고조되는 반면 세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혹적이면서도 귀여운 다양한 색상의 캐릭터와 인물들을 살필 수 있다.
사회가 명백하게 몰락의 길로 치닫고 있음에도 개인들은 모든 것이 좋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적 환상'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기괴함' 섹션에서는 베이컨에 대한 오마주 작품, 2011년 3월 발생해 약 2만2000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동일본대지진과 관련한 영상과 작품, 무라카미의 대표적인 '오타쿠'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오마주'는 뒤틀린 신체와 왜곡된 모습을 통해 인간의 공포와 불안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라카미의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 중 하나인 '미스 코코'는 일본의 현대문화뿐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보고 상품화하려는 세계적인 강박 관념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무라카미는 동일본대지진이 자신의 예술 세계의 변곡점이 됐다고 말한다.
"부모를 잃고 우는 어린아이가 방송에 나왔는데, 마을주민이 '엄마는 별이 됐다'고 설명하는 모습을 봤다. 그 순간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인간이 너무 괴로울 때는 스토리를 제공해 패닉에 빠진 정신을 진정시켜야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라카미의 영상 작품도 만나볼 수 있는데, '메메메의 해파리'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마사시가 시골마을로 이사를 와서 겪는 모험담을 담은 SF 판타지 영화다.
'덧없음' 섹션에서는 이번 전시의 키워드와 일치하는 작품으로 본인과 반려견을 좀비화한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가 등장한다. 무라카미는 이 작품에 대해 "제 몸을 디지털 스캔해서 실물 크기로 프린트 아웃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작업을 시작했고 한 5~6년 정도 걸렸다"며 "어떤 컨셉을 갖고 한 게 아니라 흥미를 추구하면서 한 작업으로 제 작품에서는 굉장히 드문 방식의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흥미'로 시작했다지만 실제 작품을 마주하면 굉장한 기괴함에 공포감을 느낀다. 무라카미는 "인간의 다양한 공포를 실체화한 것이 몬스터나 악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든 말든 그런 것을 봤을 때 '저런 공포가 있었지' 하고 공감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은 500나한도의 북 현무 부분에 나오는 두 요괴와 48나한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두 요괴는 익살스러운 모습이나 붉은 요괴의 입을 벌린 자세는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되어 탄생을 나타내는 '아'로 표기하고, 푸른 요괴의 입을 다문 모습은 죽음을 의미하는 '음'을 나타내 금강역사의 탄생과 죽음,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암시한다.
그리고 전시 마지막 작품에서 무라카미가 끝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작품 '아미타 내영도'를 만난다. 불교에서 아미타 부처는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부처이다. 기 관장의 설명대로 윤회의 굴레에서마저 벗어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미술관 밖에 있는 '이우환공간'에서는 무라카미의 '원상' 시리즈가 걸려 있다. 한 획으로 긋는 동그라미이자 마음과 정신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수행의 표본이라는 뜻 '원상'에서 이우환의 작품과 철학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우환은 지난해 6월 무라카미를 초청하는 편지에서 "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이디어나 표현수단을 인공지능(AI)이나 컴퓨터에 너무 의존하는 탓인지 표현이 정보 게임이나 장난 차원의 짓거리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라며 "무라카미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하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다. 안으로 웅크려진 사람들에게 싱싱하고 다이나믹한 표현의 세계를 열어 보여달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3월12일까지 열린다. 당초 관람료를 받을 계획이었으나 전시 일정이 대폭 축소되면서 무료로 전환됐다.
무라카미는 1996년 '히로폰 팩토리'(Hiropon Factory)를 설립해 2001년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로 명칭을 바꾸고 지금까지 작품제작, 갤러리 운영, 애니메이션과 영화 제작, 미술과 관련된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2002년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크 제이콥스(Mark Jacobs)의 제안으로 멀티컬러 모노그램을 발표하는 등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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