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편의 오디오파일] 아이팟 클래식부터 룬까지 격랑의 10년

아이팟 클래식(왼쪽)
아이팟 클래식(왼쪽)

(서울=뉴스1)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새벽, 룬(Roon)으로 윌코(Wilco)의 '유 앤 아이'(You and I)를 듣다가 책상 한 켠에 있는 아이팟 클래식(Ipod Classic)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사용은 안하고 있지만 혹시 몰라 생각날 때마다 충전은 해주고 있는 녀석입니다. 30핀 단자 케이블도 이젠 집에 하나밖에 없네요.

그러고보니 아이팟 클래식을 구매한 지난 2010년부터 올해 2019년까지 음악을 재생하는 방법이나 수단이 정말 극심하게 바뀌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 10년 음원 소비행태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짧게 정리해봤습니다.

2010년 5월에 거금 '37만원'을 주고 구매한 아이팟 클래식은 아이팟 6세대 버전으로 무엇보다 슬림한 크기에 160GB라는 대용량 음원을 저장할 수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볼륨 휠 돌리는 맛도 좋았지요. 애플의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iTunes)와 동기화해서 음원을 집어넣은 후 AKG 'K430' 헤드폰으로 시도때도 없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이팟 클래식에 집어넣기 위해 소장 CD를 지겨울 정도로 리핑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는 아이튠즈와 오디르바나 플러스(Audirvana Plus), 이를 위한 하드웨어는 맥북에어(2010~2011년), 맥북프로(2012~2014년)를 썼습니다. 아이튠즈는 음원을 관리하고 아이팟 클래식에 자동으로 동기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고, 오디르바나 플러스는 음질개선 효과가 상당한 유료 소프트웨어였습니다. 특히 오디르바나 플러스는 아이튠즈에서는 불가능했던 24비트 음원 재생이 가능해 기꺼이 구매했습니다. 이 두 소프트웨어 없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죠.

어쨌든 이 시기 음원은 모두 다운로드를 통해 맥북에어나 맥북프로, 아이팟 클래식에 저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음원 구매처는 주로 네이버 뮤직과 미국 아이튠즈, 영국 린 레코드(Linn Record)였습니다. 특히 린 레코드는 24비트 클래식 음악 음원을, 네이버 뮤직은 국내 인디밴드와 아이돌 음원을 유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어서 즐겨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다운로드 받은 24비트 음원은 아이팟 클래식에서는 재생할 수 없었습니다. 아예 음원 자체를 집어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라노트V2(오른쪽)

한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모으기 시작한 CD 재생은 2006년 용산전자상가에서 구매한 야마하(Yamaha) 올인원 컴포넌트 'MCR-ER 700'을 통해 했습니다. CD플레이어가 있는 리시버(앰프+AM,FM)와 소형 북쉘프 스피커를 한 데 묶은 시스템인데, 출력이 6옴에서 20W에 불과했지만 CD 재생만으로도 감지덕지했습니다. 이후 CD플레이어는 에이프릴 뮤직(April Music)의 '오라 비비드'(Aura Vivid. 2012~2013년)와 '오라 노트 V2'(Aura Note V2. 2014~2015년)를 거쳐 오포(Oppo)의 'BDP-105D'(2016년~)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다운로드 음원과 CD 재생이 메인이었던 패턴에 가히 혁명적인 충격을 선사했던 것이 스트리밍 서비스 타이달(Tidal)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5년 10월에 처음 접했는데, 재생음이 너무나 깨끗하고 촘촘하며 매끄러워 깜짝 놀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멜론이나 네이버 뮤직은 최대 320kbps 용량의 16비트 mp3 음원만을 스트리밍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에 비해 2014년 출범, 2015년 1월 미국 래퍼 제이지가 인수한 타이달은 CD 스펙인 16비트 1411kbps 용량의 FLAC 음원을 서비스했습니다.

"아이폰 5S에서도 음질이 확연히 좋다, 멜론 이런 것에 비해. 맥북과 아이폰을 통해 고품질 음원(24비트 음원은 아니다, CD 음질 수준이라는 얘기)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셈인데, 이러면 과연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NAS, 외장하드, 대용량 내장하드, 이런 게 필요할까 싶다. DAC만 성능이 좋으면 일단 소스기기는 간략히 완성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TIDAL의 카탈로그가 생각보다 풍성해 좋다. 아이튠즈나 CD로 구할 수 없었던 명반들이 즐비하다. 하여간 인터넷이 여러가지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는 시대다."

위는 타이달과 관련해 당시(2015년 10월) 제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이렇게 '스트리밍' 타이달이 음악 재생의 메인이 되자 자연스럽게 '다운로드' 스타일의 아이팟 클래식과 아이튠즈는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국내 음원서비스도 다운로드 월정액에서 스트리밍 월정액 상품으로 갈아탔고 이마저도 16비트, 24비트 FLAC 파일을 서비스하는 멜론만 남겨놓고 모두 끊었습니다. 현재 국내 음원은 스트리밍과 예전 리핑한 음원, 그리고 2000장이 넘는 CD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타이달이 좋은 것은 음질이 받쳐주는데다 서비스 음반이 생각보다 많고 PC나 스마트폰 앱에서 펼쳐지는 읽을거리도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LTE든, 와이파이든 어디서든 잘 터지는 대한민국 인터넷 환경 덕분이지요. 타이달과 멜론, 스트리밍 서비스를 애용하다보니 무엇보다 2014년 말에 구매한 250GB 맥북에어로도 충분히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예전 다운로드 시절에는 1TB 맥북프로도 감당을 못해 별도 1TB 외장하드를 2개나 갖고 다니곤 했습니다. 혹시 저장매체가 고장날까봐 유료 아이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이용했죠.

룬 화면

이런 타이달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룬(Roon)이라는, 영국 태생의 인터넷 기반 음악재생 소프트웨어입니다. 제가 처음 룬을 쓴 것은 2017년 3월이고, 그 전까지는 오디르바나 플러스 맥북에어 앱에서 타이달을 재생했습니다. 룬을 선택한 것은 제가 갖고 있는 음원을 관리하고 재생할 수 있는데다 인터넷을 통해 해당 앨범과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를 마치 세련된 잡지처럼 일목요연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타이달을 룬 앱에서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점도 좋았죠.

2015년 5월 독일 뮌헨오디오쇼에서 처음 공개된 룬은 또한 하드웨어와 연동돼 음질을 보다 개선시킬 수 있는 점이 오디오파일들의 생리에 맞았습니다. 즉 RAAT(Roon Advanced Audio Transport)라는 프로토콜을 개발, 스트리밍을 위한 하드웨어(네트워크 플레이어)가 이 RAAT를 채택할 경우 스트리밍의 안정성 및 음질향상을 꾀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컴퓨팅이 이뤄지는 전용 하드웨어(룬 코어)를 이용할 경우에는 더욱 깨끗한 소릿결과 정숙한 배경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2017년부터 하드웨어 업체들이 이러한 '룬+타이달' 스트리밍 환경을 너도나도 자기 품에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경우 RAAT 프로토콜을 채택해 '룬 레디'(Rood Ready) 인증을 받고, 디지털 아날로그 컨버터(DAC)의 경우 타이달의 24비트 음원 전송방식인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를 'MQA 디코더'라는 이름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켠에서는 구글 크롬캐스트 오디오(Chromecast Audio)가 간편하게 타이달 음원을 오디오 기기로 쏴주는 환경도 구축됐습니다.

그리고 2019년 1월23일부터 룬에서 또 하나의 강력한 고음질 스트리밍 서비스인 코부즈(Qobuz)를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2007년 프랑스에서 출범한 코부즈는 클래식과 재즈 음원이 타이달보다 훨씬 많은데다 24비트 음원을 MQA 없이 곧바로 스트리밍해주는 점이 장점입니다. 개별 곡에 대한 유료 다운로드도 가능합니다. 제가 한때 타이달과 코부즈를 병행해오다가 코부즈를 끊은 것은 순전히 룬에서는 타이달만 됐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타이달에서 코부즈로 갈아타는 룬 사용자들이 제법 많을 것 같습니다.

다시 밴드 윌코의 '유 앤 아이'를 재생해봅니다. 처음 들려오는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남녀 보컬의 하모니가 무척이나 싱그럽습니다. 앱 화면에서 '룬 라디오'(Roon Radio)를 선택하니, 이와 비슷한 성향의 곡들이 계속 소개됩니다. 일종의 인터넷 라디오가 되는 셈인데, 결정적으로는 DJ가 들려주려는 음악을 제가 거부할 수도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나윤선의 '아리랑'을 재생하니 처음 접하는 멜로디 가르도의 '배드 뉴스'(Bad News)가 다음곡으로 대기 중입니다. 10년 전 아이팟 클래식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2019년 2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