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서 활약하는 20대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선우예권
- 박정환 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한국의 20대 젊은 피아니스트 두 명이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선우예권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은 2년 전인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 콩쿠르인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선우예권(28)은 올해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향후 3년간의 국내외 공연 일정이 꽉 채워졌다.
◇ 건반 위의 시인 조성진
"조용하고 내적인 연주를 하는 젊고 위대한 건반 위의 시인."
세계적 교향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 경(卿)은 지난 11월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2017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 기자회견에서 "오랜 동료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협연자로 추천했다"며 조성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사이먼 래틀은 “처음 지메르만이 조성진을 추천할 땐 '이 친구가 어디 아픈가'라고 잠깐 의심했다"며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비판적인데 조성진의 연주를 들어보라'고 제게 추천했다"고 말했다.
"침버만도 고요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라서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서 음악적으로 조성진에게 공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베를린 필과의 협연은 23살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그는 또다른 꿈인 미국 카네기홀에서의 연주도 2017년 2월23일에 이룰 수 있었다.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출발점은 2년 전인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부터다.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프레데릭 쇼팽을 기려 1927년 시작돼 5년마다 열린다. 이 대회는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며 16∼30세의 젊은 연주자들이 쇼팽의 곡만으로 실력을 겨룬다.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히는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중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이기도 하다.
2015년 대회에선 예선에 참가한 27개국, 160명 가운데 20개국, 78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 가운데 조성진을 비롯해 3차에 걸친 경연을 통과한 8개국, 10명이 결선에서 경쟁했다.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연주자가 결선에 진출한 것은 2005년 임동민, 임동혁, 손열음 이후 10년 만이었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역대 최고 성적은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이룬 공동 3위다. 앞서 2000년 김정원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본선에 올랐고, 2010년 김다솔, 서형민이 본선 2차에 진출한 바 있다.
조성진은 6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병행했고,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음대 명예교수)과 박숙련(순천대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를 사사하고 있다.
조성진은 "간단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으로서, 음악가로서의 꿈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음악가로서 계속 성장해가면서 인간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제 오래된 꿈"이라고 말했다.
◇'생계형 출전' 이어간 '콩킹' 선우예권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조성진이 모든 영광을 한몸에 받던 2015년 쇼팽콩쿠르에서 씁쓸함을 맛봐야 했다. 당시 선우예권은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와 쇼팽 콩쿠르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쇼팽콩쿠르는 전체 연습시간이 5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며 "다른 국제 콩쿠르를 함께 준비하느라 그렇게 돼 버렸지만 연주자로서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많이 반성했다"고 회상했다.
'콩 킹'(콩쿠르 킹)이라 불리는 선우예권은 18살 때부터 1년에 2~4번씩 크고 작은 국제 콩쿠르에 참가해 총 일곱 차례나 우승했다. 그는 "콩쿠르에 많이 출전한 것은 경력을 쌓고 우승 특전으로 주어지는 연주 기회를 얻겠다는 마음이 아니었다"며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연주를 계속하려면 다른 선택지 없이 콩쿠르에 참가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북미의 쇼팽 콩쿠르'로 불리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는 의미가 달랐다. 그는 "인생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며 "다른 콩쿠르와 비교하면 5~6배 이상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했다. 이어 "만 28살인데 대부분의 콩쿠르 연령제한이 30세라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고 했다.
55년 역사를 지닌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1958년 냉전 시절 소련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전설적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대회인 만큼 우승자에게는 파격적인 대접이 따른다. 상금 5만달러와 향후 3년간 미국 전역 및 유럽 주요 무대에서 수백 번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 우승 직후 뉴욕타임스는 그의 단독 인터뷰 영상을 곧장 SNS에 띄웠다.
그는 이번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지인들과 연락을 끊었다고도 했다. “콩쿠르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며 "아무리 좋은 말로 응원하더라도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이유에서다.
선우예권은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우승했다는 기쁨보다 '이제 끝났구나'라는 마음이 더 컸다"고 했다.
'콩 킹'이라 불리는 선우예권이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음악 신동'이 아니라 '노력파'에 더 가깝다. 선우예권이 피아노 건반을 처음 만진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두 누나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부러웠던 그는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 학원을 찾았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자신도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를 가르치던 동네 피아노학원 선생이 그의 어머니에게 '원석같은 아이'라며 음악을 계속하길 처음으로 권했다.
이후 선우예권은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화, 신민자 교수를 사사하며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상하게도 하면 할수록 피아노 치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는 서울예고 졸업한 이후 전액장학생으로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세이무어 립킨 교수를 만난 선우예권은 음악적으로 크게 성장한다. 립킨 교수는 유명 콩쿠르에 하루라도 빨리 출전하길 바라는 어린 제자에게 피아노뿐 아니라 책, 오페라, 교향곡, 영화, 미술 같은 다양한 예술을 많이 접하길 권했다.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다른 사람의 음악이 아닌 '선우예권만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의도였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단 한 명의 피아니스트에게만 주어지는 라흐마니노프 상을 받으며 졸업한 선우예권은 줄리아드 대학원에서도 한 명의 졸업생 피아니스트에게만 주어지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상을 받았다.
선우예권의 연주 스타일에 관해 해외 언론의 호평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적확한 평가를 내놓은 곳은 '뉴욕 타임스'였다. 문장은 아주 단순하다. "그의 연주는 명료하고 에너지 넘치며 황홀하다"라는 표현이다.
선우예권은 앞으로 "내가 확신을 갖고 연주해야 청중에게도 음악이 전달된다"며 "진실을 담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음악을 연주하면서 스스로 치유도 받고 행복감을 얻는데 이런 것들을 관객과 공유하고 들려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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