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덕후의 인썸니아] 뜻밖의 드럼 특집 - 애정어린 드러머들

지난주에는 덕후아줌마의 애정밴드 '전국비둘기연합'을 보러 클럽FF에 다녀왔습니다. (전국비둘기연합은 이런 밴드 : http://news1.kr/articles/?2478949) 세번째 순서로 나왔던 전국비둘기연합을 기다리는 동안, 앞의 두 팀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생각 없이 앉아 있었는데, 첫번째로 나온 '얼스바운드'의 드럼 소리가 제 귀에 쏙쏙 박히더군요.
얼스바운드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세 멤버 모두 실력이 남달라 보였는데 특히 드럼은 그냥 쿵쿵딱딱 하는 네 박자가 아니었어요. 이들의 음악은 재즈 리듬이 가미된 록으로, 한 곡 안에서 리듬이 네박자-세박자로 변화하기도 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강약이 이어지는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드럼을 마구 두드리다가 갑자기 가볍게 툭 건드리며 멈출 때, 드럼 님은 어깨를 살짝 잡아당기며 손에 힘을 빼곤 했는데 그 포즈가 너무나 멋졌어요. 그리고 옆쪽에 놓인 심벌을 칠 때는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로 손을 옆으로 뻗어서 쨍! 치고는 그 자리에서 손을 탁 멈추었는데 그때마다 제 심장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얼스바운드의 음악에 매료된 덕후아줌마는 이들을 찜해 놓고 다음에 공연을 한번 더 보기로 맘먹었지요.
두번째 순서는 뮤지컬 배우 송용진의 밴드공연이었어요. 처음 보는 밴드였는데 앞 팀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누구더라? 무대 위에서 세팅을 하고 있는 그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얼마전 '언리미티드' 공연에서 보았던 'ABTB'의 드럼 님이었어요! (http://news1.kr/articles/?2472275 참조) 영화 '위플래쉬'에 나오는 주인공보다 더 열정적으로 어마어마한 파워드러밍을 했던, 드럼신이 강림했나 싶었던 바로 그분! 꼭 다시 보고 싶던 드럼 님인데 이런 행운이 있나요~
송용진이라는 분은 아마도 뮤지컬 쪽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는 인기배우인 것 같았는데, 저는 다른 쪽엔 눈길도 주지 않고 드럼 님 앞에 딱 붙어 서서 공연 내내 드럼 님만 보고 있었어요. (스토커로 오해했을 듯) ABTB의 음악과는 달리 송용진 밴드는 아기자기 사랑스러운 노래여서 드럼은 반주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절도 있게 콕콕 꽂히는 드럼 사운드는 숨길 수 없더라구요. 강대희 님의 드러밍은 굉장히 강한 소리가 아주 정확하게 들리는, 깔끔하면서도 매우 파워풀해요. 게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에 긴 머리카락이 팔랑팔랑 날리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전국비둘기연합 역시 0.1초의 빈틈도 없이 우다다다 이어지는 파워드럼으로 혼을 빼는 밴드인데, 세 팀의 드러머가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뛰어난 실력을 지닌 분들이네요. 마치 저를 위한 공연인 것 같았어요.
*여기서 커밍아웃 : 사실 저는 드럼 님을 참 좋아합니다. 둥둥 울리는 탐 소리가 좋기도 하고, 온 힘을 다하여 드럼을 내리치는 드러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상남자! 새로운 밴드를 만나면 먼저 드러머의 실력부터 살피고, 좋은 드러머가 있는 팀에 관심이 가는 버릇이 있답니다. 뭐, 그냥 저의 음악취향이지요. 드러머 남궁연 님이 페이스북에 '악기와 프러포즈'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드럼은 '이동도 어렵고 세팅도 오래 걸리고 멜로디가 없고 시끄럽고 드럼 치면서 노래해도 다른 반주 없으면 심지어 웃김. 안 하느니만 못함' 이라고 썼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래도 공연에서 드러머가 제일 멋지다는 말에 속지 마세요. 우리 얼굴은 공연 중 관객에게 전혀 안 보임'이라고 했는데, 저는 진심으로 드러머가 제일 멋있어요. 공연때 왜 얼굴이 안보여요? 얼마나 잘 보이는데!
그래서 생각난 김에 제가 좋아하는 드럼 님들 몇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로만티카'의 드러머 앤톤 님. 귀청이 떨어질 듯한 파워와 손이 보이지 않는 스피드를 모두 갖춘 드럼 님이에요. 마른 체형인데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7~8분의 긴 곡들을 쉬지 않고 이어서 연주하는데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도 않아요. 너무 빨리 손을 움직이다보니 드럼스틱에 손가락을 맞아 다치는 사고를 가끔 당하기도 하는데, 굉장히 아플 텐데도 끝까지 공연을 마치는 인내심 최고의 파워드러머입니다. 앤톤 님 이후에 연주하는 드럼 님들을 모두 오징어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염상훈 님은 제가 참 애정하는 드러머인데요. 귀여운 외모에 성격이 좋다는 장점도 있고 또 매우 똑똑한 드러밍을 하기 때문입니다. 탐의 정중앙 부분을 정확하게 내리치는 건지, 염상훈 님의 드럼 사운드는 공명이 잘 되어 뿅! 하고 맑게 울리는 소리가 나요. 파워나 스피드 같은 스킬과 상관없이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고나 할까요. 원래 저는 탐 소리를 좋아했지만 금속의 심벌이 챙챙 울리는 소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염상훈 님의 드러밍을 본 후부터 심벌 소리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드럼 님은 특히 차이나 심벌이라는, 울림이 깊고 소리가 멀리 퍼지는 심벌을 자주 사용하는데 공명이 되어 나즈막한 꽹과리 소리같이 들리는 그 소리는 정말 듣기 좋아요.
윤영완 님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매력이 넘치는 외모가 눈에 띄지만, 연주를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파워드러밍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앵클어택은 곡이 끝나도 쉬지 않고 다음 곡을 이어서 연주하기 때문에, 마치 "죽을 때까지 해보자"는 듯한 힘든 표정으로 땀을 줄줄 흘리며 드럼을 내리치는 영완님의 모습을 보면 마구 빨려드는 느낌이에요. 물론 더워서 그렇겠지만 중간에 셔츠를 벗어던지고 초콜릿 복근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고마운 분입니다.
일렉트로닉 밴드인 이디오테잎에서, 기타와 베이스가 아닌 전자음에 맞추어 드러밍을 하는 DR 님은 이디오테잎의 아날로그식 EDM에 한층 무게감을 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두 DJ들의 연주에서는 전자음의 특성상 애드립이 없고 강약의 표현이 쉽지 않으므로, 드럼이 그러한 애드립과 강약을 담당하고 있어요. 다른 밴드에서의 드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입니다. 실력이 출중한 DR 님이 그 역할을 매우 잘 하고 있어서 이디오테잎의 음악에 독창성을 더하는 것 같아요. 특히 팔을 높이 들고 빡! 하며 스네어를 내리칠 때의 포즈는 정말 일품입니다. 참 멋있는 드러머예요.
함진우 님은 항상 재미있다는 듯 살짝 웃으며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연주를 하는데,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격이지만 드러난 팔뚝에는 탄탄한 근육과 함께 타투가 남성미를 과시하는 반전남입니다. 입으로 둥둥 빰빰 하며 악기의 연주 소리를 따라 부르며 신나는 표정을 짓는 것과는 달리 고막을 강타하는 엄청난 사운드를 내는 드러밍을 보면 놀라서 턱이 뚝 떨어질 지경이 되곤 해요. 언체인드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는 밴드이기에 서울에서 자주 공연을 하지 않는 것이 아쉽네요.
드럼은 상당한 파워가 요구되는 악기이기 때문에 여성이 연주하기 어렵지만, 남성 못지않은 멋진 드러밍을 하는 여성 드러머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하나인 밴드 57의 김설 님은 가느다란 팔, 다리의 어느 부분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으나 가냘픈 몸매의 파워드러머예요. 예쁜 얼굴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즐겨 입어서 매우 여성스럽게 보이지만, 연주를 할 때는 터프하기 그지없습니다.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활력이 넘치는 드러밍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남녀 관객 모두 홀딱 반하게 되지요.
미모의 여성 드러머라면 빼놓을 수 없는 유혜진 님. 여성 드러머의 장점을 살려 섬세하게 리듬을 쪼개어 상당히 매력적인 드러밍을 합니다. 먼저 너무나 예쁜 외모가 눈길을 사로잡고, 연주할 때의 도전적인 표정이 마음을 설레게 하며, 세련미 넘치는 리듬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삼위일체의 완벽한 드러머예요. 음악성이 뛰어나서 지루할 틈이 없는 독창적인 리듬을 구사합니다. 보는 눈이 행복하고 듣는 귀가 호강하는 드러밍이지요.
그 외에도 텔레플라이의 오형석 님, 야야의 이용진 님, IMGL의 최재훈 님, 호랑이아들들의 조성현 님, 제8극장의 김태현 님 등 제가 좋아하는 드럼 님들은 수도 없이 많아요. 모두들 대단한 실력을 지닌 훌륭한 드러머입니다.
드럼은 멜로디를 낼 수 없고 둥둥 쿵쿵 울리는 타악기지만, 밴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드럼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네 박자라도 쿵짝쿵짝 단순한 리듬인지, 사이사이에 고스트 사운드를 넣는지, 혹은 박자를 쪼개어 길이를 다르게 하는지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거든요. 어떤 밴드의 음악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그래서 멜로디가 아니라 드럼인 것 같아요.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앞에 서서 팬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독차지할 때 뒤에서 묵묵히, 또 열심히 그들을 뒷받침하는 드럼 님들. 저같이 드럼 님만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공연에서 드러머가 제일 멋지다니까요.
필자 강지연은
나이가 좀 되는 서울아줌마.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패션스쿨을 다녔으나 배운 것을 써먹은 적은 없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 시골의 대명사 오클라호마에서도 살았던 경험 있음.
2007년 우연히 본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에게 한눈에 훅 빠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탠딩 공연이라는 걸 가보게 되고…
그 공연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연주 모습에 넋을 잃고 그 후 홍대 인근 클럽을 쏘다니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Bunka 패션스쿨 졸업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졸업
k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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