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여우인간' 극작가 이강백, "여우에 홀린듯 살아가는 한국사회 풍자"
- 권영미 기자, 박정환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박정환 기자 =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하는 아이들의 놀이로 시작하는 연극 '여우인간'은 꼬리를 자르고 인간들 속에 섞여 들어간 네 명의 여우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설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여우가 역으로 인간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면 재밌겠다는 작가의 발상에서 시작됐지만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의 무거운 한국현실이 함께 담긴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지난 27일 세종문화회관 안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우인간'의 작가 이강백(68) 역시 작품처럼 위트와 유머가 돋보였다. '여우인간을 집필하면서 유난히 어려웠거나 반대로 잘 써졌던 장면이 뭐냐'는 가벼운 첫 질문에 이강백 작가는 "반절은 어려웠고 반절은 잘 풀렸다고 대답하면 어떤가요?"하고 되받아쳤다. 그리고 질문지를 보곤 "다음 질문도 이상하네.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썼냐, 아니면 필 꽂혀서 먼저 쓴 장면이 있냐란 질문이네?"하고 말했다.
하지만 1971년 등단 이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극작가로 살며 해마다 빠짐없이 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곧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희곡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쓰는 사람이 있나요? 운문인 시는 두보나 이태백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썼겠죠. 두운이나 각운같은 운율을 맞추려고 쓰고나서 조금 고쳤겠지. 하지만 시든 희곡이든 (순서대로) 다 쓰기가 쉽지 않을 거에요."
이강백 작가의 부인은 김혜순 시인이다. 그래서 인터뷰 중 이강백 작가는 시와 희곡을 비교한 답변을 종종 내놨다. '여우인간'은 한국에서 가장 여우가 많이 산다는 월악산이 고향이지만 덫에 걸린 후 살기 위해 꼬리를 잘라버린 여우가, 꼬리를 자르고 인간이 되자며 선동해 동료들도 꼬리를 자르게 하고 다함께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놀이처럼 가벼운 이야기 속에 광우병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대통령선거, 국정원 댓글 공작, 세월호 등 최근 수년간 한국을 뒤흔든 사건들을 담았다.
극작가 이강백은 예술총감독인 김혜련씨 아니었으면 여우 인간이 공연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에게 공을 돌렸다. "지금 이런 시기에 이런 (심각한) 내용의 작품이 서울시극단에서 공연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이강백 작가는 여우에 홀린 듯 제정신이 아닌채 사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풍자하고 싶었단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자와 위트 속에서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며 노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도의 노래' 가사와 세월호를 애도하는 "우리가 구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는 노랫말은 묵직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웃고 즐기다가도 엄중한 현실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면에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연상시킨다. 코러스 부분에 대해 이강백 작가는 "코러스도 처음엔 대사로 된 장면이었지만 다른 장면과 동일한 형식으로 흘러가니까 인상적으로 떠오르지 못해 묻혔어요. 그래서 더 강한 인상을 주려고 코러스로 바꿨죠"라고 대답했다.
이강백 작가는 집필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해요"라고 했다. 그는 "작가는 항상 이 두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돼요. 이 두가지 질문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요. 하지만 무엇을 쓸 것인가를 따져보는 게 더 효과적이죠. 그 질문에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어떻게 쓰느냐는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지요. 이 과정을 거치면 그 작품은 공감을 얻고 감동을 줄 수 있게 됩니다"하고 말했다.
이강백 작가는 어떻게 해야 연극에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다른 장르와 달리 연극에선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극작가는 시인과 달라요. 시인은 '한 사람'(a man)에게 집중해야죠. 내면 깊이 파고들어가 무엇을 건져내잖아요. 극작는 '그 사람'(the man)에 집중하죠.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냐에 집중해서 무엇을 건져내야 해요. 다른 모두가 그 사람에게서 뭘 느끼냐를 건져내는 사람이죠. 그러기 위해서 거리를 둬야죠. 연극은 무대 위에서 완성됩니다. 작가가 거리두기를 실패하면 먼저 배우가 괴로워져요. 배우에게 있어서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악몽이에요. 그런 연기를 보는 관객이 감동할 수 있겠어요?"하고 말했다.
'여우인간'에서 생각처럼 되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강백 작가는 '신의 한 수'로 생각해 넣은 '변비환자'가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변비환자는 네번째 여우인 미정이 청소부로 취직한 남산타워 화장실을 이용하는 인물이다. 고기반찬만 좋아해서 다 먹어치운다고 가족들이 싫어하고, 여우놀이를 잘해 여우라며 학교에서 놀림받고, 사회에 나가선 상추에 싸서 먹지 않고 삼겹살만 먹는다고 "삼겹살 너혼자 다 먹었구나! 우린 겨우 상추만 먹었다!" 하는 부장의 고함소리를 들으면서 변비증세가 점점 심해져가는 청년이다.
이강백 작가는 "변비환자의 의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쉬워요. 변비는 개인적 체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현상이죠. 마음 놓고 화장실에 있지도 못하게 만드는 사회. 몇시까지 출근, 퇴근은 돈도 안주면서 되게 늦게까지 있어야 되고. 그런 의미에서 변비는 개인의 병이 아니라 사회의 병이요."
'죽느냐 자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여우인간'의 광고문안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끝없는 뫼비우스 띠를 과감히 자를 수 있을까, 변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자는 말에 이강백 극작가는 "옆에서 말고 정면에서 찍어줘요. 늙으니까 검버섯이 많아져서 보기 싫더라고"하며 앞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여우인간'은 3월27일∼4월1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관람료는 2만∼5만원이다(문의전화 02-399-1000).
**극작가 이강백은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 후 '알', '파수꾼', '북어대가리', '물고기 남자', '호모 세파라투스' 등 40여편의 작품을 썼다. 1982년 동아연극상, 1986년 대한민국문학상, 1992년과 1995년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2014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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