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상흔 간직한 북악 스카이웨이 개통 [김정한의 역사&오늘]
1968년 9월 28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8년 9월 28일, 서울 북악산 능선을 굽이도는 10km의 관광도로 '북악 스카이웨이'가 준공 개통했다. 수도 북쪽 관문인 자하문(창의문)에서 정릉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2차선 도로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 도로의 태생은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아닌 안보의 비상구였다. 같은 해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려 한 '1·21 사태'가 발단이었다. 청와대 뒷산이 뚫렸다는 충격에 정부는 수도 방어망을 재정비해야 했다. 북악산 일대 경계를 굳히고 군사작전 도로를 구축하는 일은 정권의 최우선 과제였다.
공사는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험준한 산세를 깎고 바위를 깨며 반년 만에 길을 냈다. 군사적 목적을 감추고 대외 선전 효과를 노려 '스카이웨이'라는 관광도로의 외피를 둘렀다. 유사시 병력과 화력을 급파하고 군 초소와 방공 진지를 엮어 철옹성으로 삼겠다는 전략이었다.
개통 직후 북악 스카이웨이는 서울의 최고 명소로 떠올랐다. 유료도로였음에도 자가용을 몬 신흥 중산층과 택시 나들이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1970년대 초 북악팔각정이 들어서며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방한 귀빈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았고, 야경을 보려는 인파로 밤마다 불야성을 이뤘다. 또한 결혼식 직후 택시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신혼여행 코스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안보의 그늘은 쉬이 걷히지 않았다. 무장 경찰과 군 초소가 깔렸고 보행은 철저히 통제됐다. 사진 촬영조차 막히던 긴장의 공간이었다. 분단이 낳은 군사 방벽과 산업화의 여가 문화가 공존하던 기형적 풍경이었다. 냉전 아래 놓인 서울의 자화상이 능선 위에서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된 셈이다.
북악 스카이웨이는 반세기를 거치며 변모를 거듭했다. 2000년대 들어 산책로가 열리고 북악산 탐방로가 시민 품으로 돌아오며 경계의 굴레를 벗었다. 총부리를 감추려 깔았던 아스팔트 길은 이제 현대사의 상흔을 품은 채 시민의 쉼터이자 명품 산책로로 탈바꿈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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