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국적인 작곡가 조지 거슈윈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98년 9월 26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8년 9월 26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훗날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허물며 '가장 미국적인 선율'을 빚어낸 20세기 음악의 혁신가 조지 거슈윈이다.
유년 시절 거리에서 대중음악에 빠져든 그는 12세 무렵 형 아이라 거슈윈의 피아노를 독학하며 천재성을 드러냈다. 15세에 악보 출판사들이 밀집한 '틴 팬 앨리'에서 '송 플러거'로 일하며 대중의 호흡을 익힌 그는 1919년 가요 '스와니'의 대히트로 스타 작곡가에 올랐다. 탁월한 작사가였던 형 아이라와의 협업은 그의 도약을 이끈 든든한 디딤돌이었다.
예술적 전환점은 1924년에 찾아왔다. 악단장 폴 화이트먼의 제안으로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뉴욕 에올리언 홀에서 초연한 것이다. 고전 음악의 틀에 재즈의 자유로운 리듬을 대담하게 녹여낸 이 곡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에 섰다.
1928년에는 관현악곡 '파리의 미국인'을 발표하며 원숙한 역량을 과시했다. 모리스 라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유럽 거장들은 그의 독창성을 인정하며 배움 대신 고유의 스타일을 지킬 것을 권했다. 거슈윈은 유럽풍 모방을 벗어나 도회적 생명력을 음악에 오롯이 담아냈다.
음악적 정점은 1935년 전막 포크 오페라 '포기와 베스'였다. 흑인 빈민가의 삶과 사랑을 다루며 흑인 성악가들을 대거 기용했고, 아리아 '서머타임'은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 됐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결합한 이 작품은 미국 오페라사의 독보적 기념비로 남았다.
하지만 거슈윈의 질주는 허무하게 멈췄다. 1937년 여름 영화 음악 작업 중 쓰러진 그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으나,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고 현대 음악의 새 지평을 연 그의 선율은 오늘날에도 거대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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