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성립 [김정한의 역사&오늘]
1932년 9월 23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2년 9월 23일, 아라비아반도에 거대한 단일 왕국이 깃발을 올렸다. 네지드와 헤자즈의 왕이었던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분열된 영토를 통합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건국을 공식 선포한 날이다.
사우디 왕가의 부흥은 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의 근거지 리야드를 적대 세력 라시드 가문으로부터 기습 탈환한 압둘아지즈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거친 정복 전쟁을 벌였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변을 틈타 1925년에는 메카와 메디나 등 이슬람 양대 성지가 자리한 헤자즈 왕국마저 집어삼켰다. 사막의 칼날을 앞세운 그의 행보는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판도로 귀결됐다.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국호는 통치 가문인 '사우드의 가문'을 의미한다. 국호에 가문명을 직접 명시한 드문 사례로, 국가 전체가 사우드 왕가의 사유물이자 성채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이븐 사우드는 엄격한 정통 이슬람 근본주의 분파인 와하브파와 결탁해 내부 결속을 다졌다. 칼과 종교적 교리가 한 몸이 된 통치 체제는 이후 국가 전반을 지배하는 확고한 이념적 토대로 자리 잡았다.
건국 초기 왕국의 형편은 극도로 빈한했다. 메카를 찾는 순례자들의 통행세와 척박한 대추야자 농업에 의존하던 탓에 국가 재정은 늘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흙먼지 날리는 사막과 낙타 무리가 전부이던 이 황량한 땅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괴물로 변모하리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반전은 불과 6년 뒤 터져 나왔다. 1938년 다란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면서 왕국의 운명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쏟아져 나온 검은 황금은 가난한 유목 국가를 단숨에 글로벌 패권의 핵심 축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석유 확보를 위해 사우디 왕가와 밀착했고, 사막의 왕국은 중동 정세의 최고 실세로 급부상했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무기로 국제 외교와 에너지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복잡해진 중동정세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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