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 버제스 셰일에서 캄브리아기 화석군 발견 [김정한의 역사&오늘]

1909년 8월 30일

캄브리아기 화석 아노말로카리스 화석. (출처: Wilson4469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9년 8월 30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로키산맥 버제스 고개에서 특이한 암석이 발견됐다. 발견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사무총장이자 고생물학자인 찰스 둘리틀 월컷이었다. 그가 말을 타고 가던 중 우연히 발길을 멈춰 쪼갠 검은 셰일 속에는 인류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묘한 고대 생명체들이 선명하게 잠들어 있었다.

이 발견은 고생물학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었다. 뼈나 껍데기만 남는 일반 화석과 달리, 버제스 셰일은 산소가 차단된 미세 진흙 속에 급격히 묻혀 내장과 촉수, 눈 등 연약한 연조직까지 완벽히 보존됐다. 지질학적으로 완벽한 보존 상태를 뜻하는 '라거슈테테'(Lagerstätte)의 대표 표본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발굴된 화석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1미터 크기에 원형 입과 집게발을 지닌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아노말로카리스', 등에 가시가 돋치고 배에 촉수가 달린 '할루키게니아', 5개의 눈과 긴 주둥이를 지닌 '오파비니아' 등 현대 분류 체계로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생물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는 약 5억 4000만 년 전 시작된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결정적 물증이었다. 찰스 다윈조차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의 난제로 꼽았던 초기 화석 기록의 공백을 메우며, 초기 고생대 바다에서 오늘날 주요 동물 문(門)의 조상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하고 분화했음을 완벽하게 입증했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서 '원더풀 라이프'에서 버제스 셰일이 진화에 대한 인류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평했다. 진화는 필연적 진보의 사다리가 아니라 우연과 멸종이 빚어낸 역사라는 것이다. 만약 생명의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튼다면 인간은 결코 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110여 년 전 버제스 고개에서 일어난 월컷의 우연한 발견은 생명사의 가장 눈부신 순간을 열어젖혔다. 5억 년의 시간을 건너온 기괴한 화석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생명의 다양성과 존재의 우연성에 대한 깊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