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파멸의 도화선이 된 살라망카 전투 [김정한의 역사&오늘]
1812년 7월 22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12년 7월 22일, 스페인 서부 살라망카 인근의 황량한 언덕에서 나폴레옹 전쟁의 향방을 바꾼 역사적 대격전이 벌어졌다. 웰링턴 자작 아서 웨즐리가 이끄는 영국·포르투갈 연합군이 오귀스트 드 오댕 마르몽 원수의 프랑스군을 완파하며 이베리아반도 전황의 주도권을 완전히 침탈했다.
당시 마르몽 원수는 연합군의 퇴로를 차단하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전열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군 사단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며 심각한 방어적 균열이 발생했다. 관측 지점에서 이를 포착한 웰링턴은 즉각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기습적인 정면 및 측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연합군의 과감한 돌격이 시작되자마자 프랑스군의 좌익은 불과 40분 만에 궤멸당했다. 마르몽 원수는 전투 초반 연합군의 포격으로 중상을 입어 지휘권을 상실했고, 후임 지휘관들 역시 밀려드는 연합군의 기병과 보병의 협공을 막아내지 못했다. 프랑스군은 1만 3000명이 넘는 사상자와 포로를 남긴 채 사분오열하여 후퇴했다.
살라망카 전투는 군사학 관점에서 웰링턴의 정교한 매복과 전술적 통찰력이 빛을 발한 명승부로 평가받는다. 웰링턴은 수비에만 치밀하다는 기존의 평가를 뒤엎고, 적의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는 결단력 있는 공격형 지휘관임을 입증했다.
이 승리의 파장은 스페인 전역을 넘어 유럽 전체로 확산했다. 연합군은 여세를 몰아 수도 마드리드를 탈환했으며, 프랑스의 이베리아반도 지배력은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나폴레옹 본반이 러시아 침공을 감행하던 상황에서 발생한 살라망카의 참패는 프랑스 제국의 전선 이중 분할 부담을 가중했다.
살라망카에서 거둔 웰링턴의 승리는 무적으로 불리던 프랑스 육군의 신화를 깨뜨렸다. 이는 이베리아반도 전쟁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을 촉진하는 거대한 역사적 시발점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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