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판 쿠바 피그만 침공 [김정한의 역사&오늘]

1961년 4월 17일

피그만 침공 중 피격된 미국의 수송선 휴스턴호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1년 4월 17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한 쿠바 피그만 침공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냉전의 정점에서 미국이 이웃 국가의 정권을 전복시키려다 처참하게 패배한 기록으로 남았다. 또한 이후 세계를 핵전쟁의 위기까지 몰아넣는 도화선이 됐다.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에 성공하며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자,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그 뒤를 이은 케네디 행정부는 카스트로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CIA는 쿠바 망명자 1400여 명으로 구성된 '2506 여단'을 훈련시켜 쿠바 남부 피그만(Bay of Pigs)에 상륙시켰다.

미국의 계산은 간단했다. 상륙군이 진격하면 카스트로에 반대하는 쿠바 민중이 봉기하여 정권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미국의 오판이었다. 카스트로 군대는 상륙 72시간 만에 침공군을 완전히 제압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개입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것을 우려해 약속된 공중 지원을 철회했고, 이는 상륙군을 고립된 사지로 내몰았다. 결국 100여 명이 전사하고 1100여 명이 생포되는 참혹한 결과로 끝났다.

이 사건의 여파는 막대했다. 케네디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제적 망신을 당하며 정치적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반면에 카스트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사회주의 혁명"을 공식 선포했다. 이후 미국의 재침공을 두려워한 쿠바가 소련에 밀착하면서, 1962년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피그만 침공은 정보기관의 확증 편향과 타국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한 외교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줬다. 미국은 카스트로를 축출하려다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대외 정책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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