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곡 '목포의 눈물' 남긴 이난영 별세 [김정한의 역사&오늘]

1965년 4월 11일

이난영 (출처: Unknown author, 193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5년 4월 11일, 일제 강점기 민족의 한을 달래던 가수 이난영이 서울 회현동 자택에서 향년 4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비보에 대중은 큰 슬픔에 빠졌다.

1935년 발표된 '목포의 눈물'은 그의 불후의 명작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은 이 곡은 당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그를 일약 '가요계의 여왕' 반열에 올렸다. 특히 이 노래의 가사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 속에 담긴 항일의 메시지와 민족적 울분을 본능적으로 체감했다.

이난영은 독특한 비음과 섬세한 기교를 바탕으로 한국적 트로트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수욕장 풍경'과 같은 경쾌한 재즈풍 노래부터 애절한 신민요까지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는 K-팝의 원조 '김시스터즈'를 육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남편 김해송의 행방불명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자녀들을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진출 그룹인 '김시스터즈'로 키워내며 한국 음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박시춘, 손목인 등과 호흡하며 한국 가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퇴장을 넘어 한국 가요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전쟁과 빈곤, 이별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이난영의 목소리는 단순한 유흥이 아닌 치유이자 위로였다.

그는 떠났지만,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로 시작되는 그 애달픈 가락은 여전히 박제되지 않은 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목포 유달산에 세워진 노래비와 매년 울려 퍼지는 그의 선율은 이난영이라는 이름이 한국 가요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영원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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