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스코틀랜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 [김정한의 역사&오늘]
1707년 3월 26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07년 3월 26일, 수 세기 동안 갈등과 협력을 반복해 온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마침내 하나로 통합됐다. 양국 의회가 비준한 합병법(Acts of Union)이 공식화됨에 따라, 섬 전체를 통치하는 단일 국가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이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합병은 철저한 이해관계의 산물이었다. 스코틀랜드는 당시 '다리엔 계획'이라 불리는 파나마 식민지 개척 사업에 실패하며 국가 재정의 4분의 1을 날리는 극심한 경제난에 빠져 있었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파산을 방치할 경우, 프랑스와 손을 잡고 잉글랜드의 배후를 위협할 것을 우려하던 중이었다.
잉글랜드는 경제적 보상과 무역권 개방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는 주권을 양보하는 대신 파산 위기 탈출과 잉글랜드 식민지 시장으로의 진출권을 얻어냈다.
합병법의 발효에 따라 스코틀랜드 의회는 해산되고, 웨스트민스터 의회에 스코틀랜드 의석이 배정됐다. 또한 양국 간의 관세가 철폐되고 동일한 통화와 도량형을 사용하게 됐다. 잉글랜드의 성 조지 십자가와 스코틀랜드의 성 안드레아 십자가가 합쳐진 새로운 '유니언 잭'(Union Jack)도 탄생했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통합되지만, 스코틀랜드의 고유한 법체계와 장로교회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앤 여왕은 합병에 대해 "두 나라의 번영을 위한 행복한 결합"이라 칭송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런던의 상인들은 새로운 시장 확대에 환호하는 반면, 에든버러의 거리에서는 주권 상실에 분노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통합으로 인해 섬 전체가 단일 시장이 되면서, 그레이트브리튼은 유럽의 변방에서 벗어나 강력한 해상 제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이름 아래, 섬나라는 세계 무대를 향한 본격적인 확장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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